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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비엔날레
특별기획 ‘인간과 성’ 전시회를 계기로 우리 조상들의 성풍속을
담은 『한국의 춘화』가 출간되었다.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정재 최우석 등의 작품들은 의외로 대담하다. 작품 속에 담긴 숨은
의미와 함께 조상들의 풍류가 느껴지는 ‘춘화’를 소개한다. 정조를 생명처럼 여기던 조선시대…. 유교적 도덕 관념이 사회를 지배했던 18세기의 성(性)풍속을 담은 『한국의 춘화(春畵)』(에이앤에이 발행, 02-723-0291)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성을 터부시하는 사회 통념 때문에 한국의 옛 춘화는 호사가의 안방이나, 미술관·박물관의 서가, 고미술품을 취급하는 화랑의 서랍 속에 숨겨져 있기 십상이었는데 지난 3월 29일부터 6월 7일까지 열렸던 제3회 광주비엔날레 특별기획 ‘인간과 성’전을 계기로 열린 마당으로 튀어나왔다. 중국·일본에 비하면 두 세기나 늦은 일이지만 성생활을 묘사한 화집이 출간,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그것도 정조(正祖)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던 조선 제일의 풍속화가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의 그림이 책으로 묶여 나온 것이다. 『한국의 춘화』에 실린 그림은 단원의 『운우도첩(雲雨圖帖)』에 실린 15점(종이에 수묵 담채, 28×38.5cm)과 혜원의 『건곤일회도첩(乾坤一會圖帖)』에 담긴 15점(종이에 수묵 담채, 23.3×27.5cm) 중에서 10점씩을 고르고, 근대 인물화가 정재(鼎齋) 최우석(崔禹錫, 1899~1965)의 『운우도화첩(雲雨圖畵帖)』 24점(비단에 수묵 채색, 20.6×27.1cm) 중에서 10점을 뽑은 것이다.
이번에 첫선을 보인 『한국의 춘화』는 유희만을 목적으로 하는 포르노물과는 거리가 멀다. 남녀의 노골적인 성애장면을 담고 있으면서도 그 배경을 이루는 바깥 풍경이나 실내 장식품을 적절하게 배치, 단순한 성 유희를 넘어선 한 차원 높은, 예술성을 지닌 성풍속도로 그려진 것이다. 이를테면 남녀가 바깥에서 은밀하게 정사를 벌이는 단원의 작품 ‘애무정사(愛撫情事)’를 보면 그림의 초점이 두 남녀에만 맞춰져 있지 않다. 물기가 흥건한 먹으로 묘사된 계곡 입구에는 진분홍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바위와 흙더미(土坡)가 결합하는 장면은 자연에서의 음양(陰陽) 이치를 강조하고 있다. 우리 산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여성의 그것을 닮은 여근곡(女根谷)을 은유적으로 표현, 자연과 인간의 음양 결합을 한 화면에 담아 남녀의 성애를 자연스럽게 부각시킨 것이다.
배경의 정물들도 이 그림의 주제인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는 남녀에게로 시선이 집중될 수 있도록 배려돼 있다. 전체적으로 담채와 수묵이 어우러져 담담한 느낌을 준다. 당장 한 편의 시가 읊어질 듯한 서정적인 자연경관을 성희 장면과 결합시킨 그림이다.
등불을 들고 오면서 기녀와의 이런저런 정사를 생각했을 한량의 다급함은 얼른 이해가 되지만 좀처럼 기녀의 담뱃대에 대한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는다. 기녀도 담배를 피우면서 님 오시기를 학수고대했다는 해설이 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님과 뜨거운 사랑을 오래오래 간직하기 위해 담배로 지연 작전을 구사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조선시대 춘화에는 곧잘 장죽을 문 여성이 등장한다.
조선시대 춘화는 배경을 이루는 자연 경관뿐 아니라, 행위가 벌어지는 주변의 경물도 의미 없이 등장하는 법은 없다. 절구와 절굿공이가 있는가 하면, 참새나 개의 교미 장면을 살짝 곁들임으로써 강하게 암시하는 수법도 흔히 사용된다. ‘스님의 밀교’에서 동자승처럼 하녀나 시동이 남녀의 정사를 엿보는 장면을 심심찮게 등장시켜 그림 보는 재미를 돋워준다. 남녀가 성교하는 노골적인 표현이 있다 해도 주변 경관이나 화분·책상·장독대·화로·등잔·괴석 등 배경 그림들이 직설적인 표현을 누그러뜨리고 전반적인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만들어내기도 한다. 조선시대 춘화가 외설 차원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춘화에서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재미는 다른 풍속화와 마찬가지로 은유적 표현과 해학·풍자가 깃들여 있다는 점이다. 노골적인 성희 장면을 주로 묘사한 정재의 경우도 댓돌 위에 남녀의 가죽신 두 켤레를 나란히 그려놓은 작품을 남겨 고도로 절제된 춘화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춘화는 아니지만 유천(柳泉) 김화경(金華慶)의 ‘해와 초가’처럼 이상야릇한 생각을 유발시키고 있다. 댓돌 위에 나란히 놓인 가죽신을 보고 부부의 방사를 떠올리거나, 방아를 찧다가 절굿공이를 놓아둔 채 초가집 방에 들어간 부부의 나막신 두 켤레를 보고 부부가 방에서 무엇하고 있을까 하고 공연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정재의 ‘목욕하는 여인’은 혜원의 ‘단오풍정’처럼 풍속화적 성격으로 그렸지만, 그림 그 자체만 보고 춘심(春心)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프랑스 필립프 피퀴에 출판사가 발행한 『코리아 에로틱 페인팅』에는 바로 이 그림의 부분도(볼기짝이 살며시 보이는 여인의 뒷모습)를 표지 그림으로 삼았다.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화백은 1911년, 서울 부자 이모씨의 청으로 춘화 몇 장을 그려주고 이 부자의 마음에 들어 생전 처음 기생집에도 가보고 폐백으로 쌀 10가마 값이 넘는 거액을 받아 가난을 면했다는 것이다.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 화백도 호사가들의 청에 못 이겨 춘화를 그렸고, 서양화가 박수근(朴壽根)·변종하(卞鍾夏)씨도 객기로 춘화를 그린 일이 있다. 간송미술관을 세운 전형필(全鎣弼)씨도 벽사(僻邪)라며 가방에 늘 춘화첩을 넣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남녀간의 성애는 청동기시대 암각화, 신라시대 토우, 고려시대 동경(銅鏡)이나 청자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신라 토우에 해학적으로 등장하는 남녀의 결합이나 특별히 강조된 남녀의 상징은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뜻뿐만 아니라, 성 그 자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즐긴 우리 조상의 성 관념을 드러내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어디를 가나 흔히 볼 수 있는 남근석(男根石), 여근곡(女根谷)은 한국인의 자연스런 성 표현을 실감케 하는 민속 신앙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 춘화가 등장한 것은 유교 질서에 균열이 생기고 중인(中人) 계급이 성장해 소비가 늘고 유통 문화가 크게 발달한 때문으로 여겨진다. 조선시대 후기(18세기)에 춘화가 유행한 것은 명대(明代) 호색문화 유입과 관련이 있다. 아마도 명대 춘화가 조선 후기 춘화 유행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18세기의 진경산수(眞景山水)나 풍속화가 이룩한 독자성과 마찬가지로 춘화 역시 중국 것과 다른 조선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조선의 춘화는 중국 춘화의 도상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조선의 성풍속을 짙게 반영하고 있어 회화적인 가치를 지닌 미술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17세기를 전후해 판화로 제작되어 상품으로 팔리기 시작한 중국 춘화와, 같은 시대 판화의 일종인 우키요에(浮世繪)와 결합한 일본 춘화는 조선 춘화와 다르다. 일본 춘화는 채색과 인물 묘사, 과장된 성기, 화려한 의상과 기구 등을 통해 강렬한 인상을 주고, 중국 춘화는 아름답게 채색한 정원이나 궁중을 배경으로 다양한 체위 묘사에 초점을 맞춘 성적 유희물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중국·일본 것에 비해 한국의 춘화는 성을 자연현상과 음양사상으로 녹여낸 예술 작품이다. 우리의 성풍속은 문인화적 품격을 유지하면서 은유적이고 해학적으로 표현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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