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정치의 새장을 여는 Devolution


지난 5월 6일 치루어진 지방선거는 영국 정치의 새판을 짜는 역사적 선거였다. 웨일즈와 스코틀랜드 자치의회를 구성하는 의원들을
선출함으로써 21세기 새로운 영국의 모습을 갖추게 한 이 Devolution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닌것인가?

Devolution이란 중앙의 권력이 상위의 권력이며 주어진 권력이 일방적으로 상위권력에 의해 빼앗길 수도 있는 상위 정치체로부터 하위
정치체로의 권력의 분산 ("dispersal of power from a superior to an inferior political authority")을 의미한다. 이 Devolution은 그 지방
의원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보다 많은 권한 행사의 폭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의미의 분권화(Decentralisation)보다는 보다 많은
권력의 이양을 의미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상위권력인 중앙 권력의 통제를 받는다는 점에서는 헌법에 의해 권력의 분할이 보장되는
federalism 보다는 적은 권력 이양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Devolution은 행정권한의 이양이나 사법 권력의 이양, 법률제정권한의 이양
또는 이 모두의 종합을 포괄하는 것이다.

사실상 미디어와 이번 "Devolution"의 산파역인 노동당의 호들갑과는 달리 웨일즈와 스코틀랜드로의 Devolution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던 역사적 과정이라 보아야 옳다. 웨일즈의 경우 이미 오래전에 종속적인 입장에서 합병이 이루어져(웨일즈는 1284년,
1536년, 1543년의 법에 의해 합병이 되었다.)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이 적었지만 스코틀랜드의 경우 잉글랜드로부터 많은
양보를 얻어낼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합병을 결정한 탓에 합병시기부터 상당한 권력을 분점할 수 있었다. 스코틀랜드의 귀족들이
상원에 출석, 투표할 수 있는 권한, 영국 국교회(우리나라에서 "성공회"라고 불리우는)와는 다른 종교적 전통과 신앙관을 가진 장로교회의
교권의 유지등이 이미 합병을 공식화한 1707년 Act of Union에 명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법에 사법권의 독립성이
유지된다는 것이 명시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행정권한의 Devolution은 Scottish Office와 Welsh Office가 만들어진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주로 이루어졌다. 스코틀랜드 장관(A
Secretary of State for Scotland)가 1885년에 다시 임명되고 (합병이후 계속 존재했던 이 직위는 1746년에 없어졌었다.) 스코틀랜드와
관련된 전문적인 행정부서인 Scotland Office가 1928년에 만들어짐으로써 상당한 정도의 행정권력이 스코틀랜드로 이양되었다. 정부
부서인 Welsh Department는 1907년에 만들어졌으나 A Secretary of State for Wales 직위와 Welsh Office가 만들어진 것은 1964년의
일이었다. 이러한 행정권한의 이양과 함께 일정정도의 입법권력 또한 이양된 되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의회에서 스코틀랜드와 관련된
법안의 경우 Scottish Grand Committee 와 두 개의 Scottish standing committe(우리나라의 국회상임위원회)에서 심사를 맡게 되었고
웨일즈의 경우도 1979년부터 동일한 의회기구에서 자신들과 관련된 법안을 심사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행정권한, 입법권한의 이양은 한계를 가지고 있었고 1960년대부터 지역정서에 기반으로 의석을 차지하며 점차 힘을 갖게 된
지역 정당들, 즉 웨일즈의 경우 Plaid Cymru, 스코틀랜드의 경우 Scottish Nationalist Party에게 이러한 부분적인 권력 이양은 불만스러울
수 밖에 없었으며 이들이 이후 Devolution의 견인차로 나서게 된다. 왜 1960년대에 이러한 지역정당이 힘을 얻게 되었는가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러나 역시 가장 큰 이유는 스코틀랜드 북해에서의 석유 발견. 석유로 얻은 모든 수입이 중앙 정부로 들어가고 큰 부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스코틀랜드인들은 중앙 정부가 자신들의 돈을 낭비하고 있다고 믿기 시작했던 것. 이러한 스코틀랜드인들의 중앙
정부에 대한 반감이 지역정당의 출현의 바탕이 되었다는 것이다.

Devolution을 법적으로 공식화하려는 움직임은 1969년에 만들어진 the Royal Commission on the Constitution(the Kilbrandon
Commission)이 자신들의 보고서에 단지 지역감정의 격화현상 뿐만 아니라 지방 정부의 수립 가능성을 포함하면서 시작되었다. 1973년에
발간된 보고서에서 이 위원회는 스코틀랜드와 웨일즈에 의회를 수립하여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잉글랜드에도 이와 유사한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한 것이다. 보고서의 제안은 거부되었지만 Devolution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었고 격국 1975년과 76년 다수의 위원회가 구성되어 조사 연구한 결과 Devolution을 하되 스코틀랜드와 웨일즈에만
국한하여야 한다는 견해가 채택되었다. 이 견해는 결국 the Scotland Act 1978 와 the Wales Act 1978이라는 이름으로 입법화되었고
지역주민들의 투표에 붙여졌지만 실행에 필요한 표를 얻는데 실패함으로써 실행되지는 못했다. 두 법안 모두 실행되기 위해서는 전체
유권자 40% 이상의 지지가 있어야 했는데 비록 스코틀랜드에서 찬성표가 반대표보다 많이 나왔지만(1,230,937 대 1,153502) 전체 유권자
40% 이상의 지지에는 모자랐던 것. 웨일즈의 경우는 반대표가 찬성표보다 압도적으로 많았었다. (956,330 대 243,048) 이 법안들은
1979년 마가레트 대쳐 정부에서 다시 잠시 논의되었으나 보수당은 이후 약 20년동안 의회에서의 논의를 피했었다. 이미 찬성이 그리 많지
않고(전체 유권자의 40%가 지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국론분열의 가능성이 있으며, 무척 소모적인 논쟁이라는 것이 그 이유들이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인들의 유권자들의 Devolution에 대한 열망는 무척이나 강하였고 결국 스코틀랜드 출신 야당들 즉 Labour Party,
Liberal Democrat, Scottish Nationalist Party로 하여금 Devolution을 위한 야권공조를 이루게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야권 공조는 손발이
맞지 않았는데 이는 노동당과 Liberal Democrat의 경우 Devolution을 최후의 목표로 한 반면 Scottish Nationalist Party의 경우
Devolution을 분리독립을 위한 첫발걸음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

결국 이 Devolution은 블레어에 의해 보수당의 장기 집권을 막기 위한 웨일즈와 스코틀랜드의 표 끌어안기의 무기가 되었고 오늘의
Scottish Assembly와 Welsh Assembly의 탄생을 보게 된 것이다.

이번 스코틀랜드 의회와 웨일즈 의회 선거결과는 영국 정치의 새판을 짜는 의미를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가장 큰 원인은 오랫동안
논의되어 오던 비례대표제가 현실정치에 도입되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군소정당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이 비례대표제가 이번
지역의회 선거에서는 집권정당의 효자노릇을 하였다. 비례대표제덕에 노동당은 지역정당의 급부상 속에서도 다수의 의석을 추가하는
효과를 보았던 것.

선거결과

Scotland 의회
Wales 의회
Labour 56석
Labour 28석
SNP 35석
Plaid Cymru 17석
Tories 18석
Tories 9석
Lib Dems 17석
Lib Dems 6석
Greens 1석

Others 2석



그러나 이러한 비례대표제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노동당은 양 지역 모두에서 절대과반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였고 연정으로 21세기 영국
지방정치의 새장을 열어야 한다.

웨일즈와 스코틀랜드에서 Plaid Cymru(Welsh어로 The Party of Wales)와 Scottish Nationalist Party가 각각 제 1 야당으로 부상하였다는
점은 중앙 집권적 영국 정치의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동안 군소정당으로 Westerminster에서 소외되어 왔던 지역정당들은
자신에게 맡겨진 새로운 역할, 즉 Wales의 경우 제 1 야당으로서, Scotland의 경우 연립정권의 파트너로서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스코틀랜드 의회 개원식에서의 의원선서 역시 영국 정치전통에 큰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Westerminster에서 이루어지는 의원
선서에서 여왕의 통수권을 인정하는 것과는 반대로 상당수의 스코틀랜드 의회 의원들은 여왕의 통수권 대신 스코틀랜드인들의 주권을
대변하겠다는 것으로 선서문을 만들었던 것. 왕실과 의회의 절묘한 동침이 무참히 깨지는 순간이었다.

21세기는 Globalisation 과 Localisation이 병행하는 시기가 될 것이라는 의견이 비등하고 있다. 자신은 British가 아니라 Welsh 혹은
Scottish이며 유러피언 유니언이나 유엔에 독립적인 대표를 파견하겠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상당수의 의원들을 가진 Welsh
Assmbly와 Scottish Assembly의 길은 21세기 국제 정치 판도를 가늠하는 중요한 하나의 잣대로서도 관심을 끌 것이 틀림없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