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브리지 奇人笑叢 I.

(Oxbridge, Odds and Annecdotes.)


1. Gowner와 Towner

어느나라의 어떤 대학에 대해 이야기할때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옥스포드와 캠브리지를 설명할때에도 주의하여야 할 점이 있다. 어떤 부분을
어떻게, 어느 정도로 설명할 것인가를 항상 염두에 두지 않으면, 그 깊은 시간의 바다 속으로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거나, 그 많은 일화와
사건들의 숲에서 결국 길을 잃기 때문이다. 긴 역사와 많은 이야기들을 담은 방대한 자료에 압도되어 한동안 미루어 오다 마침내 결정한
방향은 마치 골동품 상점을 구경하는 기분으로 옥스포드와 캠브리지를 둘러보며 각 콜리지(College)의 한 귀퉁이에 먼지를 뒤집어쓴채
놓여져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하나 하나씩 닦아 거실 장식장에 진열하는 기분으로 써 보자는 것이었다. 심각한 역사도, 광고성 소개도
모두, 읽는 이들의 진열장에 갖다놓기에는 격이 맞지 않을듯하므로 그 중간의 불안한 균형을 맞추는 것이 아마도 이 연재를 끝낼때까지의
"품질관리" 원칙이 될 듯 하다.

옥스포드의 탄생, 그리고 캠브리지

옥스포드와 캠브리지의 역사는 계급투쟁이나 我와 非我의 투쟁이 아닌 Gowner와 Towner의 투쟁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생과 대학에 관계되어 있는 이들이 가운을 입고 다니는데서 유래가 되어 이들을 부르는 명칭이 된 Gowner와 대학이 성립되기
이전부터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마을 사람들을 일컫는 Towner, 이들 Gowner와 Towner의 투쟁이 그 탄생과 발전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12세기 말엽, 그러니까,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교황의 힘이 엄청나게 강해서 영국의 존 왕이 교황의 특사에게 왕관을 받쳤다가 다시
돌려받는 형식적인 절차를 치를 정도였던 그때, 유럽의 파리, 볼로냐와 같은 지역에는 학자들의 집단적으로 거주하며 학문을 연구하고
있었단다. 그러나 이들 학자들과 지역주민들의 사이는 그리 좋지 않았던 듯 하다. 많은 학자들이 왕권과 교회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지역을 찾기 시작했고 옥스포드가 이들로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하여 자연발생적으로 대학도시 옥스포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이런
상황속에서 Henry 2세가 내린 칙령, 즉 "모든 방랑하던 학생들은 영국으로 돌아오라"는 것도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던 이곳에 정착하여 학문을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1215년 존 왕(King John)이 University Charter에 사인을 하면서 점차 법적인
권위를 부여받기 시작하였으나 이러한 평화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하였다. 끊임없는 불화가 학자들과 마을 주민들 사이에 일어났고
숫적으로 열세였던 학자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자, 근처에 있는 Reading이나 원래 거주하던 Paris 등지로 피난을 가기 시작했는데
이때 일단의 학자들이 Cambridge로 가게 되었단다. 이들이 왜 캠브리지를 피난 처러 선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해석이
존재하지 않으나 당시 캠브리지에 몇군데의 수도원이 있었고 이들 도망온 학자들을 그리 홀대하지 않았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야기라고 한다. Gowner와 Towner와의 투쟁은 이후 지속적인 문제였는데 또 한번의 가장 큰 사건은 이른바 1355년에 일어난 St.
Scholarstica's day massacre. 지금도 옥스포드의 중앙 표시 역할을 하는 Carfax 근처의 술집(the Swyndlestock Tavern)에서 두명의
옥스포드 학생이 맥주 맛에 불만을 느껴 맥주를 술집 주인의 얼굴에 뿌리는 것을 시작으로 3일간 60여명의 학생이 사망자를 낳은 이 사건은
결국 Edward 3세가 개입, 시장과 300명의 마을 사람들을 감금하고 대학의 총장에게 마을의 경찰권과 행정권을 부여함과 동시에
마을사람들이 매년 반성하는 의미의 보상금을 지불케하는 것(이후 500년간 지속된)으로 막을 내렸다. 이때 역시 많은 Gowner들이
캠브리지 등지로 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만 하더라도 현대적인 의미의 대학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을 때여서 어느 대학이
"먼저인가"라는 질문이 별로 의미 없을 수도 있으나, 위에서 간단히 언급된 역사적 사건을 통해,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성균관 대학교가 건학 주년 기념으로 옥스포드의 Vice-Chancellor(Vice- 라는 접두어 때문에 "부"총장으로 번역하면 곤란한데 이 사람이
실질적인 총장의 업무와 권한을 모두 갖기 때문이다. 영국 여왕과 수상의 관계에서 수상에 해당한다고나 할까, 하여간 총장( Chancellor)는
입학식과 졸업식에 한번씩 초청되어 연설하는 것이 유일한 업무요 권한이라고 한다.)를 초청하였다던가 하는 "역사의 해석 경향"을
참고하여 굳이 선과 후를 따지자면 옥스포드가 먼저라고 할 수 있겠다.

A Secondary University; somewhere up in the North?

이처럼 어쩌면 같은 뿌리를 가졌다고 할 수도 있는 이 두 대학은 경쟁관계라는 역사적 운명(또는 "사명?")을 띠게 되었다.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이 이 두 대학에서, 마치 역사라는 연극 무대에서 자신의 역할을 위해 대기하는 배우들처럼 대사를 외우고, 분장을 하고, 소도구를
준비하였다. 윌리엄 피트를 비롯한 수십명의 수상과 뉴우턴과 같은 과학자, 오스카 와일드(비록 졸업은 하지 못하였지만)와 같은 문호,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인물들이 이 두 대학을 거쳐갔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쩌면 그러한 경쟁관계가 오히려 자연스럽다고도 할 수 있다. 경쟁할
만한 대상이 있는데 경쟁하려하지 않는 엘리트라면 엘리트가 될 수 없었을 것이므로....

이러한 경쟁의식은 곳곳에 배어있다. 옥스포드 대학에서만 쓰이는 특별한 은어들(강의 장소, 교수의 직책, 각종 행정 절차 등)을 모아놓은
Glossay 한귀퉁이에 눈에 익은 단어 "캠브리지"는 "북쪽 어딘가에 있는 이류 대학"이라는 주석을 달고 있다. 신입생들에게 경쟁의식을
부추기는 "의식화 교육"의 일부분인 셈이다. Blues라고 불리우는 양 대학의 대표선수(초기에 조정경기에 참가한 선수들이 옥스포드는 Dark
Blue의 유니폼을, 캠브리지는 Light Blue의 유니폼을 입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명칭)들이 참가하는 럭비, 조정 경기의 결과는 영국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관심사이기도 하다. 이들 경쟁관계는 국경이 없는데 각 나라마다 조직되어 있는 이 두대학의 동창회 역시 그리 만만치
않은 경쟁관계를 갖고 있다. 이들 두 대학 출신이 반드시 지배엘리트인것 만은 아니다. 옥스포드의 St. Hugh College에서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 여사가 민주화 투쟁을 준비하고 있었다면 건국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룬 김대중 대통령이 캠브리지에
잠시(김대중 대통령은 정치 은퇴를 선언한 직후 93년 1월부터 6월까지 6개월간 캠브리지에 Visiting Fellow로 머물렀었다. 6개월, 하지만
정치 재개를 고민하고 준비하던 그에게는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던 시기였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와 있었다는 것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을까?

University와 College

여느 영국 대학, 특히 최근에 만들어진 "미국식"시스템의 대학(영국인들이 Red Bricks라고 부르는)과 이 두대학이 가진 중요한 차이는 바로
College System이다. University는 각 College들이 행정적인 편의를 위해 만들어 놓은 협의체적인 성격이 강하고 이들 College들이
무척이나 독자적인 정책과 재원으로 자신들 College만의 독자적인 성격을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이 두 대학의 특징이다. 예를 들면 두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은 자신이 전공하려는 과(Faculty)에서의 입학허가 이외에 최종적으로 각 College의 입학사정에서 합격을 해야만
입학이 되는 것이며 만약 College에서 입학 허가를 받지 못하면 학교에 입학할 수가 없다. 어떤 College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장학금, 교육
여건등이 모두 달라지므로 좋은 College(주로 College가 학생들에게 얼마나 많은 혜택을 제공해주느냐와 명성으로 결정된다.)에 대한
경쟁이 치열하게 되고 비록 옥스포드나 캠브리지의 학생이 되더라도 어떤 College에 다니느냐가 이들 학생들의 quality를 표시하는 간판이
되기도 한다. 예전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영국 수상 Tony Blair가 다닌 St. John's College, Oxford 는 대입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College이다.

역사 속으로

수세기를 거치면서도 두 대학의 변화에 대한 평가는 두가지이다. 대학 외부의 시각은 "수세기를 거쳤어도 별로 변화가 없었다."이고 대학
내부의 시각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이다. 이러한 상반되는 시각이 어쩌면 두 대학이 얼마나 자시만의 전통과 학풍의 유지를 중요시하는지
반증해준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숱한 역사적 인물들의 대기실, 세계사의 일부분을 학교의 역사로 간직하고 있는 이 두대학의 이야기를 옥스포드로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본시 경쟁과 연이 없는 범인으로서, 어떠한 종류의 경쟁관계로부터도 자유로운 필자가 옥스포드의 College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순전히 글 전개 편의를 위한 것 이외에 아무런 뜻이 없다는 것을, 혹시라도 이러한 경쟁관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독자들이 있다면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