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는 역사를 싣고

Royal Mail Stories


체신부가 정보통신부로 간판을 바꿔달면서 동화제목같은 "편지 쓰는 날"이 어떻게 될까에 대해 궁금해한적이 있었다. 정보 통신 기술이
발달하면서(아니 서로에 대한 관심이 소원해지면서) 언제부터인가 편지쓰기는 무척이나 부담스런 작업으로 간주되었고 결국은 정부
부처에서 편지 쓰기를 장려하기 위해 특정일을 정하였던 것이었다. 전화나 컴퓨터통신과 같은 인스턴트 커뮤니케이션으로 인해 효율성이
점차 떨어지고 있는 편지 쓰기를 장려한 것은 아마도 "전화"와 "컴퓨터 통신" 등의 말과 어울려 쓰기에는 알맞지 않는 그 애틋하고 정겨운
"사연" 전하기를 계속 유지하자는 목적에서였을 것이다. 알렉산더 듀마가 자신의 책이 어떻게 팔리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보낸 "?"라는
짤막한 신호를 큰 종이에 그려 보내자 출판사측이 다시 "!"라는 표시를 답장으로 보냈다는 축약도 편지가 가지는 심오한 의미에서나
인상적으로 여겨진다는 인식도 한 몫을 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마치 사라져가는 전통을 지켜보자는 캠페인을 연상시키는 이 "편지 쓰는
날"의 상황과 이 조그만 섬나라 영국의 상황은 사뭇 다르다.

아침 신문과 함께 수북이 놓여 있는 우편물로 하루를 시작해서 동네 구멍가게처럼 생긴 조그만 우체국에서 혹은 마치 기선 화통처럼 생긴
우체통(Pillar Box)을 통해 편지 부치는 것으로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이들 영국인들에게는 우편문화, 그리고 그 문화의 중심축 Royal
Mail은 여전히 그 중요성을 잃지 않고 있다.

1840년 표준형 페니 우표가 도입되면서 Royal Mail은 영국인들의 삶의 일부분이 되기 시작했다. 문자해독율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었고
교육과 훈련을 받은 노동자들이 산업현장에 더욱 많이 뛰어들었으며 이에 따라 이들의 삶 역시 더욱 풍성해져갔다. 편지의 배달 외에도 돈
거래, 저축, 전화, 은행 업무 등을 맡기 시작하면서 Post Office의 업무 역시 보다 복잡다단해졌고 마을의 우체국은 주민공동체의 중심이
되기 시작했다. 말, 마차에서 기선, 비행기 등으로의 교통발달 역시 Royal Mail 발달의 큰 원동력이 되었다. 특히 철도의 발달에 Post
Office가 미친 영향은 지대하였다. 20세기 정보 고속도로가 운위되고 있는 지금, 이른바 우편 혁명이 시작되던 1840년 이후의 이야기를
돌아보는 것은 아마도 그 애틋하고 정겨운 "사연"의 중요성을 지키고 싶어하는 우리 정서의 발로일 수도 있다.

왕의 로얄메일에서 국민의 로얄메일로

1985년 영국 Post Office는 Royal Mail이 대국민 서비스를 시작한지 350년이 되는 것을 기념하는 성대한 행사를 벌였었다. 즉 1635년 7월
31일, Bagshot에서 차알스 1세가 그의 국민들도 자신의 Royal Mail을 사용할 수 있다고 윤허를 내린 것을 기념하는 것이었다. 과연 차알스
1세가 국민에서 사용 허락을 내린 것은 정확히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런던에서 지방까지 닦여져 있는 Royal Mail을 위한 길과 중간 중간에 위치한 여인숙의 건초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사용요금을 내야 하지만.

당시의 여인숙 주인들은 왕의 사신들이 전달하는 편지를 보관하는 우체국장의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왕의 윤허가 떨어지고 나서부터는
왕의 사신 대신 Post boy라고 불리우는 이들이 편지를 배달하기 시작했고, 커뮤니케이션의 암흑시대나 다름없었던 백성들도 서서히
새로운 소식을 접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말을 이용하여 편지를 배달하던 이들 Post boy들의 시대는 Mail Coach라고 불리우는 우편마차의
등장으로 막을 내리고 우편마차는 당시의 개념으로 대량, 신속의 편지 배달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우편마차를 모는 이들은 마치
군인처럼 유니폼을 입었고 우편물을 보호하기 위한 무장 경호원들을 대동하였으며 당시까지는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었으므로 때로는
4명까지 승객을 싣고 가기도 하였다. 1830년대와 1840년대의 우편마차는 당시 대중교통수단의 꽃이었고 이들이 야간에 런던에서 각지로
빠져나가는 모습은 많은 구경꾼들을 불러모으기도 했단다.

여왕의 뒤통수에 침을 뱉으라!

1840년 5월 6일 수요일은 세계 우편 역사의 분수령을 이루는 중요한 날이다. 그것은 세계 최초의 우표(뒤에 접착제가 발라져 있어서 물이나
침을 사용하여 겉봉에 붙일 수 있는)가 최초로 편지를 배달하는 요금으로 받아들여진 날이기 때문이다. 이 변화는 전직 교사 출신인
Rowland Hill이라는 이에 의해 이루어졌다. 기존의 우편제도는 여러가지 불편한 점을 갖고 있었다. 우편요금은 정부 수입의 중요한
원천이었으므로 실제 비용에 따라 요금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세수 필요에 따라 정해지고 있었다. 기본 요금은 봉투 속의 편지
장수에 따라 정해졌고 이 기본요금은 다시 거리에 따라 요율이 곱해졌다. 만약 편지가 스코틀랜드로 배달되는 것이면 여기에 부가요금이
계산되었다. 물론 이 모든 요금은 수신자가 부담하는 것이어서 전달되지 못하는 편지의 경우에는 요금을 받지 못하였다. 이러한 요금
산정방식은 사용자들로 하여금 괴상한 우편사용법을 개발하게 만들었다. 편지 한장을 쓸때와 두장을 쓸때의 가격이 달랐기 때문에
사용자들은 먼저 일상적인 방향으로 편지를 쓰고 다시 이 종이를 옆으로 뉘어서 편지를 쓰는 방식을 사용하게 되었다. 마치 암호 편지를
쓰는 것과 같은 이 방식은 널리 사용되던 방식이었다. 일단의 상인들은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내야 할 경우 큰 종이를
사용하여 여러사람에 글을 전하는 게시판 형식의 편지쓰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받는 사람은 종이에 쓰여져 있는 사람들에게 연락하여 이
편지를 회람시키거나 잘라서 해당되는 사람에게 인편으로 전달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했다. 영국판 사발통문이라고나 할까....

스코틀랜드로 가는 편지의 경우는 더욱 이상한 일들이 발생했다. 즉 편지가 겉봉에 쓰여진 주소로 배달되었을때 수신자가 겉봉에 쓰여진
자식이나 친지의 글씨로 그들의 생사를 확인하고는 편지 받기를 거절하는 일이 자주 일어난 것이다. 스코틀랜드까지의 우편요금이
상대적으로 비쌌다는 사실이 낳은 웃지 못할 촌극이었다. 우편요금이 편지를 전달할 때 지불되었으므로 우편배달부가 이 돈을 횡령하거나
노상강도의 표적이 되는 일도 자주 일어났다. 여러가지로 불편하고 효율성이 없는 제도였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Rowland Hill로 하여금
우편업무의 개선을 주창하게 만든 이유들이었다. 그는 실험을 통해 런던에서 에딘버러로 가는 편지가 당시의 요금의 4%가격으로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만약 무게에 따라 요율을 정해 미리 요금을 징수할 수 있다면 우편서비스가 효율적이고 보다 경제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제시한 방법은 편지의 발신자가 우체국에서 요금을 지불하거나 미리 지불되는 우표 형태의 스티커나, 엽서,
봉투를 판매하자는 것이었다. 지금의 우표, 엽서의 탄생이 예고되고 있었던 것이다. 우표의 경우, 사용자들의 호응을 무척이나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Penny Black이라고 불리우는 이 우표의 여정이 순탄한것만은 아니었다. 문제는 이 우표의 도안으로 사용되던 여왕의
초상이었다. 우표의 발매가 이루어진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The Times는 여왕에 대한 충성심으로 가득찬 한 기고자의 Penny Black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게재했다. Penny Black이 최초의 여론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이다.

"당신은 여왕 전하 혹은 그 초상에 입맞추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끈적끈적한 초상그림이 결코 붙지 않을테니까;

당신은 여왕의 손에는 입맞출수 없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될 것이다.

대신 작은 빅토리아 여왕의 뒤통수에 입맞추어야 하니까

You must kiss our fair Queen or, her pictures, that's clear

Or the gummy medalion will never adhere;

You will not kiss her hand, you will readily find

But actually kiss little Vickey's behind. "

외국인으로서, 생각없이 하루 평균 2-3번씩 국가 원수인 엘리자베스 2세의 뒤통수에 침을 뱉는 우리의 경우 자못 긴장되는 경구이다.
앞으로는 물을 사용하는 것이.....

이러한 스캔들에 시달리던 Penny Black은 약 10개월간 사용되다가 Penny Red로 바뀌게 되었다. 문제는 우표가 검정색인데 소인을 붉은
색으로 찍으면 표시가 나지 않고 이 우표를 계속해서 사용하는 사례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결국 검정색 우표색은 붉은 색으로, 붉은 색
소인은 검정색으로 바뀜으로써 이 우편 혁명은 세계화하기 시작했다. 예상외로 이 우표 시스템을 세계에서 두번째로 도입한 나라는
브라질이었다. 1843년 브라질이 우표제도를 도입한 이래로 미국, 러시아, 프랑스, 스페인, 그리고 포르투갈이 차례로 우표제도를 도입하게
되었다. 우정국이라는 명칭으로 우편업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우리나라도 그리 뒤떨어지지 않은 우편 역사, 우표의 역사를 가진 셈이다.

그들의 Royal Mail

오늘날의 로얄메일은 소포를 배달하는 Parcel Force, 은행업무와 함께 Post Office의 가장 중요한 업무이다. 많은 발달을 이루었지만 우편
혁명가 Rowland Hill의 원칙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국내 우편 요금의 표준화. 단일한 요금으로 거리의 원근과 관계없이 삶의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Royal Mail은 편지가 가지는 사회적인 무게를 중요시하는 영국 사회에서는 결코 사라져가는 전통과 역사의 한부분으로
전락하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