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ny Blair의 혁명 : 97년 영국 총선 (The Blair Revoltion: Election 97)

메이 데이 Massacre

"Massacre"로 묘사되는 1997년 5월 1일의 영국 총선은 승자인 노동당(the Labour Party)에게나 패자인 보수당(the Tory Party)에게나, 영국정치사를 장식했던 자신들의 수많은 기록들이 한꺼번에 갱신된 역사적 선거로 기억될 것임에 틀림없다. 보수당의 득표율 31.4%는 근대적인 보통선거제도가 도입된 1832년 이래 최저의 득표율이며 의석수 165석은 1906년 이래 최저이며 스코트랜드에서 한석의 의석도 가지지 못한 것은 최초의 사건이다. 7명의 장관급 각료 ( Cabinet Member)가 자신의 의석을 잃은 것은, 1906년 수상이었던 Arthur Balfour를 포함한 8명의 각료가 의석을 잃은 기록에 육박하는 끔찍한 "참변"으로 표현되고 있다.
두번의 재검표를 거친 끝에 46번째 당선자를 만들어낸 제 3 당 Liberal Democrats에게도 이번 선거는 오래 기억될 만하다. 2차대전후 계속 사양길을 걷던 Lib Dem은 1929년 이래 가장 많은 의석을 확보함으로써 양당제로 분류되던 영국 정치체제의 새로운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120명의 여성의원이 당선되었다던가, 최초의 이슬람 교도 의원이 나왔다던가하는 의회자체의 체질개선을 예고하는 신선한 기록 역시 이 기록갱신 선거의 한 단면이다.
그러나 역시 가장 놀라운 기록의 산실은 노동당. 블레어 노동당의 압도적 승리는 1945년 종전후, Winston Churchill을 상대로 Clement Atlee의 노동당이 일구어낸 압도적인 승리 기록 역시 무색하게 만들었다. 총 393석의 의석을 획득, 146석의 다수(다수 = 최다의석을 가진 당의 의석수 - (여타당의 의석수의 합))를 유지했던 Atlee의 전설적 승리는 총 419석의 의석을 획득, 179석의 다수를 확보한 97년 토니 블레어(Tony Blair)의 노동당에 의해 그 빛을 잃게 된 것이다.
금세기 들어 최장의 선거유세기간이라는 6주동안, 노동당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줄곧 11-18% 정도의 리드를 지켜, 승리를 예고했으나 토니 블레어와 선거운동본부의 핵심 멤버들이 예상했던 것은 50내지 80석정도의 다수. 최소 150석 다수를 예고하는 방송에 토니 블레어 조차 "This is crazy" 라며 놀라움을 표했던 97년 영국 총선, 노동당 승리의 원인은 무엇인가?

New Labour, New Campaign

사실상, 노동당 승리의 가능성은 선거 캠페인이 시작되기 전부터 예상되던 것이었다. 18년이라는 보수당의 장기집권에 대한 국민들의 변화 기대 심리, 유럽단일통화를 둘러싼 보수당의 내부분열, 잇따른 보수당 의원들의 금품수수와 관련된 스캔들 등은 정책과 무관하게 국민들 사이에 反보수당 정서를 파급시키기에 충분한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노동당 압승의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보다도 토니 블레어를 축으로 철의 규율과 필사적인 집권의지로 뭉친 "New Labour"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92년 총선 패배의 쓰라린 경험은 노동당에게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노동당의 핵심지지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민들은 79년 겨울(이른바 the winter of discontent)에, 전국을 파업과 쟁의의 혼란으로 몰아넣었던 노동조합의 힘에 대해 반감을 가져왔고 마가렛 대쳐에 의해 자극, 이용된 이러한 반감은 지속적으로 노동당의 집권을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물이었다. 1994년, 새 당수가 된 토니 블레어의 제안에 의해 전당대회에서 66.23%의 지지로 노동당 당헌 제 4 조 4항(이른바 생산수단의 국유화 조항)이 삭제되었던 것은 노동당의 이데올로기 지형을 좌에서 중앙으로 옮기는 거대한 지진의 시작이었다. 1996년 벽두 토니 블레어의 토쿄 방문시 공식화된 그의 "Stakeholding Society"는 극동의 평등주의적 기업노사관계를 모델로 한 것으로 설명되었고 이는 구시대적인 전투적 노동조합과의 완전한 이별을 알리는 진혼곡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들의 변화는 노동당이 갖고 있던 보수당과의 차별성을 퇴색시켰고 이를 기반으로 작성된 선거공약 역시 보수당과의 그것과 큰 차이를 갖지 못하였다. 보수당과 비교했을때 별 차이가 없는 공약사항은 중산층의 표를 끌어모으는데 이용하고 구체성이 결여된 선거공약은 장미빛 미래의 꿈을 담은 구호로 변화시킨 반면, 대동소이한 보수당의 선거공약은 헛점투성이의 空約으로 보이게 만든 것은 바로 블레어의 차세대형 선거운동본부였다.
그들이 위치해 있는 건물의 이름을 따 Millbank Tower Team이라고 불리우는 이들에게 92년의 패배는 뼈저린 교훈을 주는 좋은 재료였다. 92년 Neil Kinnock의 노동당 선거운동본부는 분열과 혼란 그 자체였었다. Kinnock의 스?진들은 의회에, 연락본부는 몇 블럭이나 떨어진 Transport House에, 선거운동본부는 차로 20여분이나 가야하는 Wallworth Road에, 정례기자회견은 Millbank Tower 빌딩에서 열려, 이들은 서로를 찾느라 선거결과를 좌우할 수도 있는 반나절을 소모하기도 하였다. 96년, Peter Mandelson을 선거운동본부장으로 수립된 노동당 97년 선거팀은 92년의 패배를 설욕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들은 모든 조직과 인력, 심지어는 토니 블레어의 사조직까지도 모두 Millbank Tower에 집중시켜 상호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성했다. Peter Mandelson과 토니 블레어의 공보비서관(이른바 "Spin Doctor") Alastair Campell은 미국 Clinton 선거 캠페인팀이 개발한 핵심 전술인 "즉각 응전(rapid rebuttal) 전술"을 채용, 보수당의 비난에 대해 즉각 역공 비난을 퍼부었다. 이러한 즉각 응전 전술은 각종 방송사로 하여금 토리의 비난과 노동당의 역공비난을 항상 같이 방송케 함으로써 토리 비난이 초래하는 악영향을 감소시키고 유권자들로부터의 신뢰실추 방지에 결정적 기여를 하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보수당의 비난성명과 공격을 방송할때에도 항상 노동당의 반응이나 입장이 방송됨으로써 노동당의 방송점유율을 증대시키는 효과를 갖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승리의 기반이 된 이 모든 대변동과 조직의 중심은 역시 1812년 Lord Liverpool이후 최연소 다우닝 스트리트의 주인이 된 토니 블레어라 할 것이다.

토니, 밤비, 스탈린, 김일성?

94년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한 John Smith의 뒤를 이어 노동당의 당수가 된 토니 블레어. 그와 관련된 다양한 별칭(밤비, 스탈린, 김일성)과 형용사(영화배우같은, 뺀질뺀질한?(smarmy))는 유세기간 중 그가 보여주었던 편하고 친근한 인상 이면에 내재해 있는 철의 규율을 강조하는 권위주의형 당수의 모습을 암시하고 있다.
1953년, 에딘버러(Edinburgh)에서 태어난 토니 블레어(full name: Anthony Charles Lynton Blair)의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법조인. 노동계급 출신이었으면서도 열렬한 보수당 당원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그는 상류사회의 전형적인 루트인 사립학교와 옥스포드를 거쳐 변호사로 입신하였다. 그러나 그를 이런 완벽한 경력 성취에 전념하는 고루한 성격의 소유자로 보면 곤란하다.
그는 시골 호텔 레스토랑의 기도(경비원?: bouncer)라는 직업도 마다하지 않는 파격과 아마츄어 록 그룹("Ugly Rumours")을 결성, 등뒤까지 내려기른 머리를 출렁거리며 믹 재거 흉내내기를 즐기는 여유를 가진 "현대적" 자유인이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그의 성격이 아버지와는 다른 정치노선을 걷게 했는지도 모른다. 유세 중 자신이 기도로 일했던 호텔(the Royal County Hotel in Durham)에 들렀을때 그는 자신이 "약했기 때문에 말썽꾼들을 ?아내기 위해 덩치 좋은 친구들과 "협상"를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좌익에서부터 중도파까지 다양한 분파가 한배를 탔다고 표현되는 노동당이 별 불협화음없이 선거를 치룰수 있었던 것은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구사하는 그의 이러한 "협상" 능력에 근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전도 유망한 변호사, 아내 Chrie Blair QC(QC : Queen's Council 변호사 중에서 판사가 된 법조인에게 주는 명칭) 역시 성공적인 법조인, 자녀들의 나이까지 영국인들이 이상적인 간격이라고 생각하는 2살 터울인 이 운좋은 사나이 토니 블레어는 정치 입문과정 역시 큰 시련 없는 순탄한 과정을 가졌다. 유일한 시련이라면 1982년 보수당 안정의석 선거구인 Beaconsfield 보궐 선거에서 노동당후보로 정치에 입문하여 첫번째 패배를 맛보았다는 것, 그리고 83년 지금의 노동당 안정 의석 선거구인 Sedgefield의 노동당후보로 나서기 위해 지방당 간부인 John Burton(현재까지 블레어의 선거구 선거운동 사무장 역할을 하고 있는)의 집에 찾아갔을때, 그와 그의 친구들이 시청하고 있던 Real Madrid와 Aberdeen과의 축구경기가 끝날때까지 옆 소파에서 조용히 앉아 기다려야 했던 수모 정도라고나 할까?
83년 6월 의원이 된 이후 그의 정치 경력은 New Labour의 대권주자를 위해 마련된 정규과정처럼 진행되었다. Neil Kinnock의 경제문제 보좌관으로 있을때 경제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그는 경제인들을 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바보스러운 짓이라는 것을 배웠다. 고용문제를 담당하였을 때는 노조와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하는가에 대한 관을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교훈은 아마도 마가레트 대쳐로부터 배웠던 듯 하다. 그는 일찌기 마가레트 대쳐에 대해 "나는 그녀의 단호함과 목적의식에 감명받았다. 나는 지금, 바로 그런 점이 우리 당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찬사를 보냈고, 이에 대해 마가레트 대쳐는 "그는 Hugh Gaitskell 이후 우리가 본 가장 훌륭한 노동당 리더이다"라고 화답한바 있다. 그러나 이들의 첫번째 대결은 그리 좋은 분위기가 아니었던 듯 하다. Thatcher 행정부 시절, 고용문제를 담당하고 있던 블레어는 대쳐 수상을 비판하면서 1944년에 작성된 정부의 고용백서를 인용하였다. 그러자 수상은 담담하게 핸드백에서 바로 블레어가 인용한 그 고용백서를 꺼내 그의 헛점을 맹반격하였던 것. "Thatcher's handbagging"이라는 말이 만들어졌던 이 일화를 통해 그는 " 결코 적을 얕잡아 보지 말아야 한다"라는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유세 기간 중 계속적인 노동당의 우세 예상 속에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최선을 다한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 교훈의 일단을 발견할 수 있었다.

Tony, you shouldn't take anything for granted!

금세기 그 어떤 수상보다도 많은 권력을 손에 쥐고 출발선에 선 토니 블레어는 그 어떤 수상보다도 많은 난제를 해결해야 할 지도 모른다. 유럽단일통화 가입, 스코틀랜드와 웨일즈에로의 권력 이양(devolution) 등 국민투표에 부쳐 해결해야 할 수많은 문제들, 거대 정당이 지니는 고질적 내분을 방지하기 위해 내부의 좌파와 우파를 결속하여 당의 통일과 단결을 유지해야 하는 것, 이른바 Social Chapter의 가입과 최저임금제의 도입으로 빚어질 수도 있는 투자 감소 등 이 숱한 난제들을 해결했을때 만들어질 그의 성적표 역시 또 다른 기록 갱신을 요구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의 성적표에 따라 2002년의 선거가 토리의 부메랑이 될수도, 노동당의 밀레니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선거 중 그가 가장 자주 쓰던 말은 세기를 건너는 노동당 행정부의 주문이 될 지도 모른다.

"You see, I am always against complacency. We don't take anything for gran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