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곧 법당
…
001.
몸에 대하여 [홍신자]
볼품없는 지팡이 하나에 몸을 의지하고 나는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다. 79년 여름이었다. 내 얼굴은 이미 십 년은
더 늙어 보였고 다리는 심하게 절룩거렸다. 나는, 결혼해서 뉴욕에 살고
있는 조카네에 신세를 지게 되었다. 달리 거처할 곳도 없었다. 낮이면
조카 내외는 밖으로 나갔다. 아무도 없는 집에 나 혼자 남아 고장난
내 육신을 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마음 같아선 이
뉴욕에서 훨훨 날며 춤을 추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몸이었다.
춤이 아니라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런 꼴로는
한국의 어머니를 뵈러 갈 수도 없었다. 나는 어디 갈 곳도 없었고, 뉴욕에
연락 닿는 옛 동료도 없었다. 몸이나 성하면 당장 왕년의 무대를 찾아
헤매서 한때의 동지들을 죄다 만날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것은
좀 뒤로 미루어야 했다. 우선 몸부터 고쳐야 했던 것이다.
뉴욕에 있는 병원의 권위있는 의사에게 정밀 진단을 받았다. 온갖
신경과 근육계통의 테스트 결과 좌골신경(sciatic nerve)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바로 거기에 긴장이 쌓여 있으며, 그 신경이 연결되는
모든 부분이 아프다는 것이었다. 그 선이 아래 척추로부터 다리 뒤쪽이며
발 뒤꿈치까지 연결되어 있다.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병은 약이나 수술로 치료되는 것이 아니다. 우선 치료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뜻밖이었다. 무엇이든
물질로 해석하고, 칼로 해부하고, 문제가 좀 있으면 팔이건 다리건 잘라
버려야 한다고 믿는게 서양 의학이다. 그런데 서양 의사가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의 말은 나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되었다. 우선 확신을 가져야 하고, 그리고는 나 혼자서 치료해야 한다.
스스로 병의 원인을 발견해 내고 그것을 토대로 치료 방법을 찾아내자........
나는 치료에 도움이 될 만한 의료 기관, 식이요법 센터, 운동요법 센터,
각종 치료법 등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지나온 나의 행적을 반성해
보기 시작했다.
왜 이런 병이 생기게 되었는가? 그것은
그 동안 신경을 무리하게 쓴 결과였다. 신경의 과로가 몸에 영향을 끼쳤다.
약해진 몸으로 무리한 단식을 너무 자주 한 바람에 영양 실조까지 겹쳤다.
그리고 잠자리를 조심하지 않고 차가운 곳에서 함부로 잠을 잔 것도
이유가 됐다. 인도에 있던 동안은 그런 생활의 연속이었다. 딱히 한
가지로 이유를 집어낼 수는 없었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무용을 시작하던
때부터의 여러 가지 사정이 복합적으로 빚어낸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었다.
그것을 종합하면 한마디로 '지금까지 몸을 너무 섭섭히 대우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통증이 찾아온 것은 인도를 떠나기 몇 달 전,
인도 동남부 해안의 휴양지 고아(Goa)에서 모처럼의 휴식을 취할 때였다.
나는 이제 라즈니쉬도 떠났고, 새로이 만난 또 한 분의
스승 니사가다타도 떠나 있었다. 나는 고행으로 지친 심신을 좀 쉬게
하고, 나의 치열한 한 시기를 받아 준 인도를 마지막으로 둘러보는 순례
여행을 함으로써 인도와 작별하고 싶었다. 그 여행의 첫 지점으로 당도한
것이 바로 고아였다.
지상의 천국으로 불리어지는 열대
지방의 해변, 그곳은 세계의 히피들이 모이는 해변이었고, 누구나 누드로
수영을 할 수 있는 유일한 피서지였다. 야성적인 야자수 나무가 우거져
있고, 언제든 그 열매를 따서 그 속의 신선한 물을 마실 수 있는 낭만적인
곳이다. 밤이 되면 파도소리는 유난하여 가슴이 벅차오곤 했다. 해가
지면 히피나 연인들은 그 모래밭에 모여 팬티만 걸친 채 경쾌한 음악에
맞춰 생각을 잊고 춤을 추곤 하였다.
새벽이 되어 무한히
넓고 끝이 보이지 않는 그 푸른 바다의 모래밭을 걸으면 문득 파도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장엄한 바다 앞에 너무도 작은 인간들.....
그런 생각들에 젖다 보면 어느 덧 아침 해가 떠 있고 내 몸에서 땀 방울이
맺기 시작했었다. 이런 상념을 잊기 위하여 다시 바다 속으로 어린애처럼
뛰어들어가 개구리 헤엄을 치곤 했다.
고아에서 내가
지낸 곳은 관광객들이 묵어 가는 방갈로 같은 것이었다. 풀짚으로 이엉을
한 모습이, 벽을 발랐다뿐 우리 나라의 원두막을 그대로 연상하게 했다.
앞으로는 툭 트인 바다가 보이고 파도 소리가 가까이 들리는, 해변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잠자리였다.
코코넛, 파파야,
망고, 파인애플 등의 열대 과일이 풍성한 곳이어서, 그곳에서는 과일을
갈아서 만든 무스라는 일종의 주스로 식사를 대신했다. 특별히 빵 같은
것을 따로 먹지 않아도 끼니를 때울 수 있었다. 어쩌면 나는 인도에
온 이후 처음으로 잘 먹고, 잘 잤던 것 같다. 그곳에서의 며칠은 인도에서
보낸 다른 어느 날들보다도 넉넉하고 평화로웠으며, 사치스럽기까지
한 것이었다.
그렇게 며칠을 휴식하며 잘 지낸 어느
날 아침이었다. 잠에서 깬 나는 무심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몸이 어스러지는
듯한 고통 때문에 '악!' 하고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몸을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화장실로 가기 위해 애써 움직이려 하니 지독한
통증과 함게 덜컥 허리 쪽에 충격이 온다. 격심한 통증이 숨을 몰아쉬게
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이를 악물고
겨우겨우 기어서 화장실을 다녀오고 나니 온몸에서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하루 종일 그곳에 틀어박혀 있는데, 앉아 있지도 누워 있지도
못할 만큼 고통이 심했다. 가까이에 병원도 없었다. 그리고 누구 나의
사정을 알아 줄 사람이 곁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영문 모를 고통에
식은 땀만 쏟으며 아무런 치료 방법도 강구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나는 이틀 뒤에 북쪽으로 출발할 예정으로 있었다. 인도 북단까지
가야 하는 먼 여정이 남아 이렇게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고행의 끝을
결국 이렇게 쓰러지는 것으로 마감하는가. 나는 심호흡을 하며 몸을
어떻게든 추스려 보려고 애썼다.
이튿날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꼼짝 않고 있다면 몸이 석회처럼 굳어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눈물이 찔끔찔끔 나오도록 심한 고통을 참으며 손가락부터 시작하여
팔다리의 관절들을 조금씩 접었다 폈다 하는 운동을 했다. 어쨌든 걸을
수 있게만이라도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두 팔과 오른쪽 다리는 그래도
덜 심한 편이었다. 통증은 왼쪽 다리와 허리 부분을 중심으로 해서 온몸으로
퍼지고 있었다.
나는 그 좁은 방갈로 안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기어가는 운동을 했다. 한쪽 끝에 가 닿으면 숨이 턱가지
찼다. 이틀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 내 오줌을 받아 마시는 것이
유일한 식사요 수분 섭취였다. 그날을 그렇게 지내고 밤이 오자, 몸이
후끈거리면서 어쩐지 혈기가 도는 느낌이었다. 내일이 오면 서서 움직일
수 있겠지 하는 희망 속에서 잠이 들 수 있었다.
다음날,
과연 몸을 일으켜 세울 수는 있었지만, 왼쪽 다리와 허리의 통증은 여전했다.
찔뚝거리며 걸음을 옮길 때마다 통증이 온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이런
상태로 먼 여행은 역시 무리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나는 예정했던 대로
북쪽으로 출발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렇게 행려병자 꼴을 하고 고아에
남아 있는다고 해서 무슨 뾰족한 수가 있을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야 할 길은, 고아에서 봄베이까지 24시간, 봄베이에서
델리까지 28시간, 다시 델리에서 히말라야의 다람살라까지 만 이틀,
버스와 기차로 밤낮을 쉬지 않고 가도 꼬박 나흘 이상 걸리는 먼 길이었다.
그 길은 처음 인도에 와서 고행을 시작했던 길이다. 나는 그 길을 한번
되짚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인도를 떠나기 전에 히말라야의 다람살라에
가서 티벳의 승왕 달라이 라마도 꼭 한번 뵙고 싶었다.
쓰러지더라도
가다가 쓰러지자..... 비장한 각오를 세우고 나는 방갈로를 나섰다.
방갈로 앞에서 내 몸을 의지할 만한 울퉁불퉁 볼품 없는 나무 막대기
하나를 주웠다. 그것을 지팡이로 해서 걸음을 옮겼다. 그것은 결국 내가
인도를 완전히 떠나, 뉴욕으로 갈 때까지 나를 지탱해 주어야 했다.
발을 옮길 때마다 번개처럼 등골을 치는 통증과 인도의 저
낙후한 교통 수단 때문에 여행은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제 시간에 오는
법이 없는 버스를 겨우 타면, 쓰러질 듯 탈탈거리며 달리는 그것의 진동이
허리에 자꾸만 충격을 주었다. 밤낮을 계속 달리는 기차에서는 벽에
붙어 있던 의자를 내리면 층층이 잘 수 있는 잠자리가 되어 겨우 몸을
눕힐 순 있었지만,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식수도 문제였다. 차가 멈추면
인도 사람들은 우그르르 내려서 웅덩이 같은 곳에 고인, 세균이 득실거리는
물도 개의치 않고 마셨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면역이 되어 괜찮은지 몰라도, 나는 한때 그것을 마셨다가 심한 설사와
배앓이를 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고행 중에 훈련을 쌓은
대로, 물 대신 내 오줌을 받아 마시는 쪽을 택했다.
그렇게 나는 히말라야까지 갔다. 5일 만에 열대의 여름에서 한
대의 겨울로 옮아간 것이다. 티벳인들이 사는 다르질링과 다람살라에서
몇 달을 머물렀다. 추위와 불편한 잠자리, 그리고 여전히 계속되는 통증
때문에 무척이도 고생스러웠다. 그 고생의 보람이라면 아무래도 달라이
라마를 만나뵐 수 있었다는 것일 게다.
달라이 라마는, 지붕이
초록색 양철로 덮여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린 하우스'라고 부르는
임시정부 청사 겸 관저에 거처하고 있었다. 약간 커다란 집이라고만
느껴지는, 허술한 외양을 한 건물이었다. 며칠 전에 접견 신청을 해
두었다. 지금과는 달리 그를 방문하는 외국인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
만나는 절차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어쩌면 내가 티벳과 운명이 비슷한
한국이란 나라에서 왔고 여자라는 사실이 작용을 했는지도 몰랐다.
건물의 외양을 보았을 때는 한 정부의 지도자가 집무하는
곳이란 느낌을 가질 수 없었는데, 접견실로 들어서니 그런 선입견이
씻겨져 나갔다. 내부의 꾸밈새는 모두 검소하고 소박했지만, 집기나
의자들이 경건함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단정히 놓였고 꽤 넓직했다. 벽에
커다랗게 걸려 있는 티벳 특유의 탱화가 인상적이었다.
달라이
라마는 권위의식이 없는 분이었다. 어떤 사람이라도 달라이 라마 앞에
앉을 때는 한 자리 아래에 앉게 되어 있는 티벳의 오랜 관습도 그 분이
깨뜨렸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는 내내 영어로 말했다. 간혹
단어가 막히면 비서에게 도움을 청했다.
나는 그의
첫인사에서 한국에 대한 큰 관심을 읽을 수 있었다.
"한
종교 회합에서 한국 스님을 한 분 만난 뒤로는 당신이 첫 번째 만나는
한국 사람입니다. 한국과 우리 티벳은 여러 면에서 닮은 점이 많아 특히
친근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실 두 나라의 운명에는
비슷한 점이 많다. 나라가 둘로 나누어져 있는 것도 그렇고, 식민지
통치를 받았다는 것도 그렇다. 그리고 국운의 쇠잔기를 맞이해야 했지만,
그 어느 나라보다도 오랜 역사와 전통, 찬란한 정신 문화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금세, 두 나라가 한 때 맞이한 불운에 대한 공통의 화제로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게 되었다.
"이곳의 티벳 유민들은
중국 공산 치하의 티벳 땅에 가족들을 남기고 떠나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국에도 이산가족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가족은 혹시
남과 북으로 헤어져 있지 않습니까?"
이런 질문을
나에게 던지는 그의 눈에는 헤어져 살고 있는 동포에 대한 연민이 가득
담겨 있었다. 장군과 같이 당당하고 늠름한 풍모, 성자와 같이 인자한
얼굴, 그리고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저 연민과 자비심. 나는 나라
잃은 티벳의 희망을 보는 듯하였다.
"이곳 다람살라에는
이번이 두 번째 방문입니다. 저는 수행을 위해 인도에 와 있는 중인데,
인도에 처음 왔을 때 이곳에 와서 티벳 불교를 아주 잠깐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불교의 진수는 모두 티벳어로
기록되어 있지요. 당신이 수행을 계속할 생각이라면, 티벳의 문화와
종교를 공부할 수 있도록 주선해 줄 의향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다만 달라이 라마 전하를 꼭 한번 뵙고
싶었을 뿐입니다."
나는 그 당시 내가 발견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답을 모두 구했고, 이젠 더 이상
새로운 종교, 새로운 가르침 속으로 다시 빠져 들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그를 만나고자 했던 것도 한 영적인 지도자를 단지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는 다분히 인간적인 관심이 더 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뒤에, 나는 그때까지 소중히 품에 간직하고 다니던 인삼 몇 뿌리를
그에게 선물로 드렸다. 그것은 한국에서 인도로 떠나올 때 혹시 쓰일
때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준비해 온 것이었다. 이제 쓰일 때를
찾은 것이다. 그는 나에게 축복을 내린다는 의미로 머풀러 같은 흰 천을
내 목에 걸어 주면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내 어깨에 다정히 손을 얹고 정원까지 몸소 걸어나와 주었다.
눈앞으로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툭 트여 있었고, 만년설을 어깨까지
덮어쓴 장대한 히말라야의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 장관을 함께
바라보면서 잔디밭을 잠시 걷다가 우리는 작별 인사를 했다. 비록 티벳이
나라 없는 서러움을 겪고 있으나 이렇게 훌륭한 지도자가 있다.....
티벳에 대한 지금까지의 측은했던 생각이 조금은 면해진 것 같았다.
이후로 나는 달라이 라마가 집전하는 군중 집회에서
그를 여러 차례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그때마다 나를 알아보고 도와줄
것은 없느냐고 자상한 관심을 보여 주었다.
나는 그의
관저에서 약 10리쯤 떨어진 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있었다. 산쪽으로
좀더 올라간 마을에 있는 헛간 같은 싸구려 판잣집이었는데, 가구라고는
삐걱거리는 나무 침대 하나와 낡은 난로 하나뿐이었다. 밤이면 어설피
얹은 지붕의 틈 사이로 하얀 눈송이가 포르르 내려와 얼굴에 닿곤 하였다.
밤 사이의 추위를 견디기 위해 옷이란 옷은 죄다 껴입고 잔다. 그리고
담요를 얼굴까지 푹 뒤집어 쓴다. 안 그러면 밤 사이에 눈이 얼굴에
쌓이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돌아 눕기 힘들 만큼 아픈 몸인
데다가, 옷까지 그렇게 껴입고 자니 한번 누우면 조금 움직이는 것도
어려워진다. 밤중에 소변이 마렵지 않도록 저녁에는 물을 일체 마시지
않았다.
그런 곳에서 한 달을 머물렀다. 거기서 매일같이
달라이 라마와 그의 주치의가 있는 마을로, 그리고 오버톤(overtone)으로
유명한 고승들이 있는 마을로,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찔뚝거리며
찾아갔던 것이다.
사실 달라이 라마보다 먼저 만난 것은
그의 주치의였다. 그는 다람살라 시내에 개인의 의원을 차려 놓고 있었다.
소문에 따르면, 달라이 라마의 주치의는 임신부의 맥만 짚어 보고도
출산일을 정확히 알아낼 만큼 용하다고 했다.
그가
나를 치료해 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안고 나는 그의 병원을 찾아갔다.
그는 영어를 몰라 통역이 있어야 했다. 그는 좀 건성으로 진맥을 해
보았을 뿐, 몇 마디 물어 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특별히 왜 그렇다는
해명도 없이 둥글게 빚어 만든 환약 한 보퉁이를 주면서 말했다.
"이것만 먹으면 깨끗이 낫게 될 거요. 다시 춤도 추고
훨훨 날아 다닐 테니, 그 얼굴 찡그리지 마시오."
그의
말이 별로 시원스레 믿기지 않았으나, 어쨋든 춤을 다시 출 수 있다고
장담하니 크게 절망하진 말자 싶었다. 약은 한 달치나 되었다. 그때부터
매달릴 것은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에 열심히 먹었지만 전혀 차도는 없었다.
아무래도 그는 내 병의 원인이나 내 몸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한밤중에 잠이 깨었다. 조카 내외는
모두 자는지 고요했다. 이따금 멀리에서 질주하는 자동차의 경적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내 몸을 어루만져 본다. 만지는
손과 만져지는 몸이 예민한 감각을 서로 나눈다. 나는 이렇게 몸으로
살아 있다.
나는 내 몸을 얼마나 알고 있었던가. 무용을
위해 몸을 열심히 단련하긴 했어도, 나는 내 몸의 구조와 그 기능에
대하여는 잘 알지 못했다. 내 몸에 필요한, 또 불필요한 중요한 음식들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내 몸의 오장육부가 어떤 색깔, 어떤 형태로 어느 위치에서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나는 내 몸을 몰랐다.
나는 몸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하나는 나요, 하나는
내 몸이다. 나는 내 몸에게 계속 물었다. 나의 잘못이 무엇이었고, 무엇을
어떻게 했으면 좋을까를. 내 몸은 대답한다.
"너는
네가 구하는 바를 위하여 나를 혹사하기만 했다. 너는 나를 돌보지 않았다.
너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얼마나 피로한지를 알지 못했다. 너는 에고의
부질없는 욕심에 쫓겨 의미없이 나를 학대했다. 나는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을 만큼 지쳐 있었다. 마침내 너의 긴장이 느슨해졌을 때 나는
본때를 보일 기회를 잡은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너의 노예처럼 취급당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나는 바로 너이기 때문이다."
나는 진정한 내 몸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내 몸의 모든 부분들이
고통의 원인을 역사처럼 담고 있다가 나에게 들려주었다. 나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참회의 눈물이 흘러나왔다. 나는 중도를 잃었었다. 나는
자연과의 합치를 잃었었다. 앞으로 나는 언제까지나 이 몸의 소리에
귀기울이리라. 나는 누운 채로 몸의 근육 하나하나를 조용히 움직였다.
그것은 몸의 소리에 동의하는 조용한 춤이 되었다. 눈물이 내 얼굴을
적시고 있었다.
나의 잘못을 알았으므로, 나는 다음날부터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몸을 위해 투자하기로 했다. 호흡으로 몸을
주시하고, 릴랙스(relax)를 하고, 조금씩 운동도 했다. 아직 서서 움직이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누운 채로 그 모든 것을 했다. 그것은
인도에서 터득한 호흡 수련과 명상 수행을 계속 실천했다고 볼 수 있는
생활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내 몸을 체계적으로 파악해
들어가는 한편으로 여러 가지 치료법에 관한 정보도 열심히 모았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여기저기 많은
곳을 뒤지고 많은 책을 들추었다. 서양의사도 여럿 만나 보고, 한의사도
여럿 만났다. 몇가지 방법은 몸에 직접 '실험'했다. 그당시 치료를 위한
나의 탐색 과정은 실로 '연구'라고 할 만한 것이었는데, 여러 날의 힘든
연구 끝에 확실한 결론으로 안착한 지점은 좀 엉뚱했다. 그것은 이미
내가 갖고 있던 답이었다. 원점으로 되돌아오기 위해서 그 여러 날을
헤맸던 것이다.
물론 다른 방법들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운동요법과 식이요법도 했다. 활동에
큰 지장이 없을 정도로 회복하는데 6개월 정도가, 그리고 완치하는 데까지는
1년 이상이 걸렸는데, 그 동안 내 몸에 적용한 모든 것이 함께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나는 허먼(Herman)과 모니카(Monica),
두 사람이 운영하는 운동요법 치료 센터를 찾아갔었다. 그들은 한때
발레를 하던 사람들이다. 여자의 몸에 이상이 생겨 발레를 계속할 수
없게 된 뒤, 그들은 치료를 위해 운동요법에 전념하다가 운동요법 전문가로
변신했다. 센터는 뉴욕에서 북쪽으로 여섯 시간쯤 떨어진 알버니(Albany)란
곳에 있었다.
나는 거기에서
나 자신도 몰랐던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처음
찾아갔을 대 모니카가 나에게 이런저런 동작을 해 보라고 주문했다.
나의 동작을 유심히 보던 그녀는 말했다.
"당신의
왼쪽 다리가 짧아졌다."
깜짝 놀라, '설마?'하고
실제로 재어 보니 왼족 다리가 유심히 관찰하면 뚜렷이 비교될 만큼
짧아져 있었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느 부위보다 왼쪽 무릎 부분의 통증이 특히 심했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왼쪽 다리를 약간 구부린 채로, 몇 개월 동안 지팡이에 의지하고
불균형한 걸음을 걸어다녔다. 그 동안에 다리가 그런 상태로 굳어 버렸던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일주일을 머물면서 나에게 적용할 운동요법의
동작들을 배웠다.
식이요법도 도움이 되었다.
보스턴(Boston)에는 히포크라틱 센터(Hipocratic Center)라는 식이요법
전문 요양원이 있었다. <건강을 되찾자(Let's get well)>을 쓴
앤 위그모어(Ann Wigmore)라는 할머니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그 할머니는
당시 8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일 활기차게 뛰어다니고, 언제나
얼굴에 홍조를 띠고 있어 마치 소녀처럼 보였다. 그녀는 자신이 창안한,
밀 이파리(wheat grass)즙을 먹는 식이요법으로 자신의 암을 치료한
것으로도 유명했다.
밀을 온실에 파종하여 얼마간
기른다. 잔디 정도의 높이로 자라면 그 싹을 잘라 즙을 낸다. 나도 거기에서
생활하며 그것을 하루에 한 잔씩 마셨다. 얼마나 독한지 뱃속을 얼얼하게
할 정도였다. 물론 다른 것도 먹는데, 모두 식물성이고 전혀 불을 대지
않은 것들이다. 아침에는 수박 껍질과 속을 함께 갈아 주스로 마신다.
그리고 잡곡들을 콩나물처럼 길러 그것을 생식한다. 매일 아침 목욕을
하고 운동을 계속한다. 그런 생활을 일주일 한 뒤 나 자신을 살펴보았더니,
눈동자부터 완전히 달라졌고 몸도 맑아져 있었다. 몸에서 독소가 제거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아무런 약도, 의사도
필요없었다.
나는 내몸을 알고, 방법을 알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경의 이완과 호흡이었다. 모든 생각을 다 떨쳐 버리고
단전으로까지 이르는 깊은 호흡을 하루 종일 계속했다. 들이마시고 내뱉는
과정을 1분에 한 번 정도가 되는 완만한 호흡이다. 호흡을 계속하면서
아픔을 느끼는 곳을 의식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을 풀어주기 시작하는
것이다. 손이 아니라 의식으로 그곳을 마사지해 준다. 호흡이 그곳에까지
이르도록 호흡을 보낸다. 숨은 아랫배까지 들어왔다가 다시 나간다.
그 과정을 모두 뚜렷이 의식한다. 호흡에 의식을 집중하고 완만한
호흡을 계속한다. 그러면 호흡은 아픈 곳에 이르러 그곳에 '공간'을
만들어 준다. 통증은, 신경이 눌리어 공간이 없어진 데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아픈 부위로 호흡을 전달해서, 그 동안 접히고
말리고 어지럽게 된 신경들을 자연스러운 상태로 풀어 주는 것이다.
눈을 감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을 눈으로 보듯
그려야 한다. 비주얼라이제이션(Visualization)이다. 그리고는 아픈
주위 주변을 조금씩, 근육이 제각기 놀면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해 준다. 이때, 근육을 떨거나 털어 주는 운동이 효과적이다. 말보다는
훨씬 섬세하고 복잡한 과정이지만, 이 모든 과정은 마치 구겨진 옷을
다림질해 주는 것과 같다. 비주얼라이제이션과 함께,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는 생활 전체를 병을 고치는
데 중심을 두고 매일매일 정성을 다했다. 뉴욕에 돌아왔을 때부터 몸이
그런 상태여서 더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 어느 때보다도 춤이 추고
싶었다. 인도에서 수행하는 동안 이미 마음은 무용으로 돌아와 있었기
때문에 춤추는 사람들이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 없었다. 다시 걸을 수
있게 된다면 나는 무엇보다 먼저 춤부터 추리라.... 아니, 나는 이미
누어서도 춤을 추고 있었다. 어쨌든 당장은 몸을 낮게 하는 것이 나의
최대의 길이었다. 그 몇 개월 동안, 나는 전적으로 내 몸의 치료에 매달렸고,
그것이 나의 유일한 '직업'이었다.
그러자 나의 몸은
서서히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내 몸에 이상한 현상,
아니 충동이 일어났다.
몸이 차츰 회복되어 정상을
되찾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왠지 자꾸만 어린애 같은 몸짓을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몸짓뿐만이 아니었다. 말과 모든 행동도 어린애처럼
하고 싶었다. 중심이 없는 듯한 움직임으로 아장 걸음을 걸어 보고,
또 기어도 다녔다. 잘 때는 엎어져서, 또는 뱃속의 태아처럼 뒹굴다고
발가락을 빨고, 발가락을 빨다간 방바닥을 핥았다. 그게 그때의 일이었다.
종일을 집안에 틀어박혀 앉아서 어린애처럼 기고
놀고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그렇게 행복하고 기쁠 수가 없었다. 밖에
나가서 해야 할 모든 일들은 그것에 비하면 너무도 무의미한 것으로
보였다. 그것은 새로운 몸을 얻는다는 데서 오는 충동이었다. 결국,
나는 새로 태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청신한 몸을
새로 얻을 때의 이 신선한 체험은 1년 뒤<탄생(First Being)>이란
작품으로 표출됐다. 뉴욕 라마마 극장에 독무로 올린 그 작품으로 나는
다시 무용계로 복귀했다. <탄생>에는 아무런 무대장치를 쓰지
않았다. 나는 옷을 입은 듯, 안 입은 듯한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플로어에
누워 갓난아이의 천진스런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발가락을 빤다든지,
발을 머리 뒤에다 대고 흔들과 있다든지, 엎뒤치락하면서 웅얼거린다든지,
마루를 빨아 본다든지.... . 그리고 어머니 뱃속의 양수랄까, 집이나
고향을 상징하는 커다란 풍선을 안고, 그것을 굴리고 그것을 따라 굴러가서
안기도 했다. 모든 것이 다시 태어나던 그 시기의 체험의 반영이었다.
새로운 육신으로, 새로운 영혼으로 나는 다시
태어난다..... 그런데 새로운 육신과 새로운 영혼으로 태어나는 이 생명을
안아줄 새로운 어머니는 어디 계신가? 나에겐, 이런 나를 갓난아이로
취급하여 주고,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씻겨 줄 새로운 어머니가 필요했다.
새로 태어나는 이 생명을 안아들일 그런 어머니가 없다면 참으로 한이
될 것만 같았다. 그런 응석받이 육신, 응석받이 영혼으로 살고 싶었다.
그러고 나면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그러고 나면 다시 어른으로
성장해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어머니는 어디에도 없었다.
79년 말, 나는 마침내 나를 낳아 주셨던 현실
속의 어머니를 찾아 그 곁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아직 희미한 통증이 느껴지지만 그래도 새롭기만 한 이몸을 안고 어머니를
찾아가는 것이다. 나는 모두 말하리라. 이 한때의 심정을, 나의 깊은
의식 속에 잠재된 모든 감정들을 털어놓으리라. 당신의 품에서 다시
갓난아이로 살고 싶노라고.....
그러나 나의 기대는
무너졌다. 어머니는 이미 당신의 몸조차 제대로 돌볼 수 없는 상태셨다.
어머니는 이제 78세의 고령에, 고혈압과 신경통으로 고생하고 계셨다.
나는 말을 하지 못했다. 나의 말은 어머니의 가슴만 더 무겁게 할 것이다.
나는 응석을 부릴 수 없었다. 고작해야 나는 말없이 어머니의 손가락을
끌어다한번 깨물어 보고 빨아 보았을 뿐이다. 어머니는 그런 내 손을
자고, 왜 이렇게 손이 말랐느냐 하셨다. 보살펴 줄 어머니를 필요로
하는 것은 나보다도 오히려 당신이셨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조용히
껴안았다. 그리고 주름 많은 얼굴과 흰 머리를 쓰다듬어 보았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어머니, 이젠 제가 당신의 어머니예요.'
나는 어머니가 계신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청주대학에
교편 자리를 얻었다. 그 동안 떠돌이 자식으로서 지은 죄를 조금이나마
갚고 싶어서 그 곁에 머무르기로 한 것이다.
그 무렵부터 춤을
다시 추기 시작했다. 몸이 완치되지는 않았지만,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움직일 때마다 여전히 희미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러나 까짓 희미한 통증쯤 내가 춤추는 데 아무런 장벽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만약 반신 불수의 상태로 남아야
했다면? 그래도 춤을 계속 추었을까? 아마 계속 추었을 것이다. 누워서도
추기 시작했던 춤이었으니까.
치료될 기미가 보이지
않던 동안에는 , 춤을 못 추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없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렇게 됐더라도 나는 결국 그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생태로 춤을 추었을 것이다. 춤은 팔다리를 다 갖춘 사람만의 전유물은
아니니까.
84년, 이곳 볼캐노 아트센터에서 무용
워크샵을 가졌던 때의 일이다. 참가자 한 명이 비디오 테이프를 나에게
건네 주었다. 자기가 구성한 무용 작품을 보여 주고 싶다는 것이다.
아마추어의 작품인지라, 나는 큰 기대없이 그것을 보기로 했다.
두 명의 남자가 불구자로 휠체어 위에 앉았다. 그리고
두 여자가 휠체어 뒤에 섰다. 젊은 남녀 두 쌍으로 이루어진 무용작품이었다.
휠체어에 앉은 한 남자는 다리가 없었다. 그는 30대 중반이었는데, 베트남에서
두 다리를 허벅지까지 잃었다고 했다. 또 한 명의 남자는 다리가 있긴
했지만, 형태만 있을 뿐 쓰지 못하는 채 평생을 휠체어 위에 앉아 살고
있다고 했다. 진짜 불구자들인 것이다. 어느덧 나는 처음과는 달리 유심히
작품을 보게 되었다.
우선 무용수들이 사연이
감동적인 얘깃거리가 된다. 그리고 춤이란 아름다운 몸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상식적인 사람들에게 충격을 줄 만하다. 그들이 이것을
본다면 춤의 영역을 좀더 넓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신나는
음악이 배경으로 깔리고, 두 휠체어가 활발히 무대를 누비기 시작한다.
불구자들이지만 상체를 비교적 자유롭고 강인한 느낌을 준다. 때로는
여자 무용수들이 휠체어 뒤에 바짝 매달려 균형을 맞추는가 하면, 그것을
썰매처럼 타고 함께 달리기도 하고, 휠체어와 여자들이 따로 한 방향으로
굴러가기도 한다.
작품성 자체는 따질 게 못되었지만,
나는 가슴 찡한 감동을 받았다. 그렇게도 신나게, 즐겁게, 행복하게,
마치 어린아이들같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모습..... 온전한 육신이 뽐내는
선의 아름다움보다 더 큰 아름다움이 거기에 있었다. 뒤에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두 다리를 잃은 젊은 남자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몸에 대하여 자부심을 느낍니다.
신이 나에게 준 이 몸, 비록 다리는 잃었지만, 이게 내가 갖고 있는
전부거든요. 나는 이 상태에 만족하고 신에게 감사합니다. 당신 보기에도
내가 이 몸을 사랑하고 있는 같지 않으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눈물이 나올 듯 나의 목이 좀 답답해졌다. 한때나마
몸의 불편함으로 춤을 못 출까봐 불안해한 적이 있었던 나..... 나에
대한 반성으로 생각이 미치자 순간적인 부끄러움마저 느껴야 했다. 나는
말했다.
"몸에 대한 당신의 생각, 그리고
당신의 몸, 다 아름답군요."
나는 진심으로
그의 몸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의 몸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속에
자유로움을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비록 불구의 몸이지만 그는 스스로의
몸에 긍지를 느끼고 있었다. 몸에 긍지를 느낄 수 있으면, 그 긍지에
비례한 만큼의 자유로움이 그 속에 담기는 법이다.
그것은,
이런 일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자기 신체 중에서 못났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한 두 군데쯤 갖고
있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은 비정상적으로 자주 입을 가린다. 어떤 사람은
아예 주머니에 한 손을 찔러 두고 있다. 모두 정상적인 기능을 하는
입이요 손이지만, 못났다고 생각해서 감추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의
행동은 부자유스럽다. 정상적인 입으로 웃지도 못하고, 정상적인 손으로
악수도 못하는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불구자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행동은 부자유스러울 뿐 결코 아름답지 않다.
그러나
못난 부분을 스스럼없이 드러내 보이겠다고 생각해 버리면, 그의 행동이
자유스러워질 수 있다. 그때, 상대방의 눈에는 그 못난 부분이 결코
보이지 않는다. 못난 부분이 드러났다는 자연스러움이 보일 뿐이다.
자연스러움이 무엇인가? 바로 아름다움이다.
자기
몸의 못난 부분, 부족한 부분까지도 다 인정하고, 자기 몸에 대해서
긍지를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은 자유로운 몸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유로운 몸은 아름다운 것이다.
60년대
일본에 서구풍이 요란하게 불어닥쳤다. 여성의 외모를 서양의 기준으로
보기 시작했다. 여자들이 앞다투어 코를 세우고 눈을 쌍꺼풀로 만들었다.
외풍 잘 타는 한국도 성형외과 의사들을 부자로 만들어 주었다. 당시
나는 미국으로 가려고 하던 참이었다. 우습지만 나도 그때는 미국 가서
괄시받지 않으려면 코도 높이고 눈도 키워야 되는 건 아닌가 하고 고민까지
했었다. 그때 만약 나에게 그렇게 부추기는 친구라도 있었으면 금방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 친구가 없었던 게 천만 다행이었다.
나는 그 얼굴로 그대로 지금까지 25년 이상을 서양 미인들
사이에서 버텨 왔다. 오히려 그들로부터 아름답다는 말까지 들어 가면서
말이다. 역시 동양 여인의 아름다움은 쭉 찢어진 실눈과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얌전한 코에 있는 것이다. 이민 붐 이후 뉴욕에도 한국 출신 여자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서양 여자처럼 얼굴을 변조한 사람들이 많아서, 언뜻
보아선 한국에서 왔는지 남미에서 왔는지 혈통을 분간하기가 힘들다.
본래의 자연스러움이 사라진 그런 얼굴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늘 우울함이었다.
나는 인도라는 지리적
공간을 떠났지만, 인도에서 배운 명상을 떠나지는 않았다. 명상은 줄곧
내 생활 속에 있었다. 나에게 있어 명상이란 정신과 육체가 -
사실 이 둘은 하나다 - 동시에 참여하는 하나의
'운동'이다. 이 운동으로 나는 스스로의 병까지 치료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건강을 회복한 이후, 나의 몸에 대하여
더욱 주의를 기울이고 애정을 보내자고 다짐했다. 되찾은 건강을 지키자는
것이다. 그것은 생활 속에서 명상을 계속하는 방법을 통해 이루어졌다.
사실 건강 유지란 별 게 아니다. 항상 몸을 인식하고 습관을 들이면
되는 것이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자기 몸에 대한 관찰과 연구다. 자기
몸을 일주일만 연구하고 나면, 간단한 산수보다도 더 쉽게 모든 것을
풀어나갈 수 있다. 그리고 모든 병은 결국 신경의 과로에서 오는 것이므로
너무 욕심을 부리지만 않으면 된다. 무엇이든 지나치게 하다 보면 조화가
깨어지는 법이다. 조화가 깨어진 상태, 그것이 바로 병이다.
이제 명상은 어느 때보다도 내 가까이 있었다. 명상의 구체적인
방법들은, 책에서 배우기도 했고 전문가에게서 전수받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나의 몸이라는 체험의 덩어리에서 직접 읽어 냈다. 근본적인
명상의 원리에 통하기만 하면 무엇을 통해서든 명상이 가능하기 때문에
방법이 너무 많았다. 나는 체험의 세밀한 부분들을 잘 살펴 많은 방법들을
직접 고안해 내기도 했다. 그리고는 언제, 어디서든 명상을 했다.
어는 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항상 떠나는 것이 나의
삶인지라, 나는 그런 만큼 긴 여행을 자주 하게된다. 10시간, 20시간
이상 버스나 기차 또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 때도 많다. 한때 나도 그런
시간을 견디는 것을 고역으로 생각했던 적이 있었지만, 이젠 오히려
그것이 반갑게 느껴지는 것이다.
명상이라는
'운동'은 몸을 크게 움직여서 하는 운동이 아니기 때문에, 비록 비좁은
자동차나 비행기 속일지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주위의 시선을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실제로 몸을 움직여서 해야 할 때도 있지만, 아주 작은
움직임으로 대신할 수 있기 때문에 그때도 문제는 없다.
교통
수단을 이용한 여행은, 노동이나 도보 여행처럼 육체를 직접 썼을 때의
상쾌한 피로감과는 달리 불쾌한 피로감을 준다. 이 피로감을 쌓아 두면
안 된다. 우선 이것을 수시로 풀어 주어야 한다. 평범한 동작들로도
이것을 쉽게 풀 수 있다. 목과 어깨를 천천히 돌린다든지, 어깨를 들썩인다든지,
팔목과 발목을 돌린다든지, 앉은 채로 무릎을 좀 폈다 굽혔다 해 준다든지.....
특별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냥, 몸을 좀 풀어 줘야지 하고 마음만
먹으면, 몸이 저절로 그런 동작들을 찾아낼 것이다. 문제는 그 일을
얼마나 몸에게 턱 맡길 수 있는가이다.
피로는
눈으로 먼저 온다. 손바닥을 마주 비벼 뜨거워지면 눈꺼풀 위에 잠시
대어 그 열기를 전해 준다. 그리고는 안구를 돌리거나 눈을 여러 번
꼭 감았다 뜬다. 이것을 10분쯤 반복하고 나면, 금방 신선한 기분을
되찾을 수 있다.
손을 서로 마사지하게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얼굴에서 시작하여 근육과 뼈의 흐름에 따라
몸의 각 부분을 손으로 살짝살짝 누르거나 문지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일마저 귀찮고 멋쩍다면 따로 방법이 있다. 바로 호흡이다. 실은
이 호흡이 가장 중요하다. 호흡이야말로 명상의 거의 모든 것이라 할
만하다.
앉은 자세로 아니면 선 채로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그 숨을 코에서 허파로, 아랫배로, 그리고 다시 척추 꼬리뼈에서부터
척추뼈 하나하나를 더듬으며 위로 올려, 목뒤로, 머리로 올렸다가 이마를
거쳐 다시 코로 내보내는 것이다. 아주 느리게, 천천히 긴 호흡으로,
그 호흡의 흐름을 조정해야 한다. 이것을 처음 하는 사람은 호흡의 흐름
자체를 느끼기가 어려울지 모른다. 그리고 과정을 지켜보면서 하는 호흡이
힘겹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무엇이나 그런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만 그럴 뿐이다. 익숙해지면 흐흡을 통해 싱싱한 생명의 흐름을
느낄 수 있게 된다.
호흡은 저절로 되는 것인데
왜 거기다 귀찮게 신경을 쓰는 이상한 짓을 하느냐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이상하다고 여기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하다.
호흡은 가장 근원적이고 가장 기본적인 생명의 원천이다. 이렇게 근본적인
것에 의식을 모아 보지 않는다는 게 진짜 이상하고, 충분히 숨을 들이쉬었는지
충분히 내쉬었는지 한 번도 살펴보지 않는다는 게 진짜 이상하다. 쓸데없는
미래의 공상이나 보람없는 과거의 추억에 빠져 있는 시간은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생명의 원천인 호흡을 검토하기 위해 시간을 쓰는 데 인색해선
안 될 것이다. 우리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미래도, 과거도 아닌, 지금
이 순간 우리를 살아 있게 해 주는 호흡 아닌가.
나의
병을 치료할 수 있게 해 준 것도 결국은 호흡이었다. 호흡 하나만으로도
위장병, 심장병, 척추 이상, 신경통 등 여러 가지 병을 고치는 사람들을
나는 많이 목격하였다. 이 호흡과 함께 늘 몸에 대한 의식(awareness)을
놓치지 않을 수만 있다면, 건강은 자연스럽게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복잡한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이 명상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지만, 호흡과 몸에 의식을 모으고 순간순간을 지켜보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명상이다. 호흡에 유념하면서, 자기 몸의 이상적인
자세를 의식 속에 간직하고 항상 그 자세를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잡스런
것들은 모두 물러가고 우리는 순수한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매순간을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우리는 '자연'이 된다.
나는 무용계로 완전히
복귀했다. 나의 몸은 예전보다 더 건강해져 있었다. 다시 무용가로 돌아간
것인데,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무용과는 상관없이 인도에서의 수행
체험을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하나둘 모여 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명상 지도를 좀 해 달라는 요청도 여기저기서 자주 들어왔다.
스스로는 명상 지도를 할 자격이 있다고 자부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쨌든
체험을 나눈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요청에 응하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스스로의
체험을 통해 얻은 것을 그들에게 전했다. 생활을 뿌리치고 구도를 떠나고자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 내가 전한 것은
생활 속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까다롭지 않은 명상법들이었다. 하지만
어느 것이나 모두 명상의 기본적인 원리와 진수를 담을 수 있도록 했다.
나의 병을 고치기 위해 스스로에게 적용했고, 또 남들에게
지도하면서 시도했던 것들을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 여기에 정리해 둔다.
기본적인 것만 추리니 열두 가지가 된다. 물론 순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들을 동시에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사정에 따라서 어느 한 방법을
집중적으로 실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생활 명상의 열두 가지 기법
1.마주본다
조용한
환경에서 편안한 옷차림으로 가족, 동료, 또는 연인과 가부좌 자세로
앉는다. 가부좌 자세의 이상적인 모습은 좌불상의 모습을 보면 된다.
어깨를 내리고 가슴을 펴고 척추를 길게 세우고, 목뼈를 꼿꼿이 세우되
턱은 내린다. 호흡은 아랫배로 하며 가슴의 움직임은 부드럽게 한다.
서로의 얼굴을 침묵으로 주시한다. 시간은 10분 정도가 이상적이고,
적어도 5분 이상 한다. 다음은 서로의 왼쪽 눈을 들여다 본다. 시간은
길수록 좋다. 두 사람 사이의 간격은 한 사람이 들어 앉을 수 있는 정도,
서로 손을 맞잡아도 좋다. 이 상태로 서로의 귀중한 체험을 이야기한다.
2.본질을 묻는다
위와 같은 자세로, 한 사람은
질문자가 되고 다른 한 사람은 응답자가 된다. 질문자는 상대방에게
'당신은 무엇입니까?'하고 진지하게 묻는다. 응답자는 '나는 ∼입니다.'하고
그 상황에서 자유롭게 떠오르는 대답을 한다. 뒤이어 질문자는 똑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당신은 무엇입니까?' 응답자의 대답은 달라질 것이다.
이것을 10∼15분 정도 계속한 다음, 서로 역할을 바꾼다. 이 질문을
일상 생활 속에서 놓치지 않는다면 삶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3.하루를 반추한다
잠들기 전, 자리에 누워 그날
있었던 일을 되돌이켜 본다. 그 시각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그날 아침에
눈을 뜨던 순간까지 모든 행위들을 빠짐없이 되새긴다. 그리고 그것을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지켜본다.
4. 정지해서 지켜본다
어떤 행위에 임하기 직전, 아니면 과정 중에 정지한다.
정지하여 침묵으로 상황을 지켜본다. 그리고 그 행위를 계속한다.
5. 항상 지켜본다
자기의 생각이나 행위를 항상
의식적으로 지켜본다.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슨 행위를
하고 있는지 스스로 의식하며 그 생각, 그 행위를 한다.
6.
호흡으로 명상한다.
조용한 장소를 정한다. 항상 그
장소면 더욱 좋다. 온도가 알맞고, 배가 부르지도 고프지도 않은 상태에서
편안한 옷차림으로 한다. 가부좌 자세로 앉는다. 방법은 다음 세 가지가
있다.
6-1. 위에서 말한 자세로, 호흡의 들어가고 나옴의
감각을 느끼며 코끝과 코 언저리에 의식을 둔다. 눈을 지긋이 감고 입술을
편하게 놓고 턱을 내리고 이빨과 이빨 사이를 약간 떨어지게 한다. 턱의
긴장을 풀고 눈 사이의 긴장도 푼다. 도중에 어떤 생각이 들어오면,
그것이 불청객임을 알고 내보내고 다시 의식을 코 언저리에 둔다. 처음엔
일상의 호흡보다 조금 깊은 호흡이 필요하다. 그 감각을 느끼기 위하여
숨소리까지 낼 필요는 없다. 최저 10분에서 30분 한다. 다시 일어나
걷거나 운동을 한다. 요가 자세를 취해 보는 것도 좋다. 그런 다음 다시
호흡을 계속한다.
6-2. 자세는 마친가지. 이번엔 아랫배에
의식을 둔다. 아랫배 배꼽 약간 밑을 중심으로 삼고, 그 속에 큰 풍선이
하나 있다고 느낀다. 숨을 들이쉬면 그 풍선이 부풀고 숨을 내쉬면 그
풍선이 가라앉는다. 똑같은 모습이 아랫배에서 일어나도록 한다. 아랫배가
부풀었다가 다시 가라앉는다. 이것도 처음에는 20∼25분 정도 하다가,
차츰시간을 늘여 30∼35분 정도 한다. 5∼10분 정도 쉬고 다시 계속한다.
6-3. 자세는 마찬가지.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의식'으로
온몸 전체를 한 군데도 빠짐없이 훑어 본다. 처음에는 한번 훑어 보는
데 30∼45분 걸리나 점점 시간이 줄어 들 것이다.. 이 기술이 진보되면
자기의 오장육부, 동맥과 정맥의 흐름, 그리고 뼈 속까지도 보이게 된다.
위에 보인 세 가지 명상법은 산스크리트어로
'비파사나(vipasana)'라고 하는데 호흡에 대한 주시, 또는 통찰(insight)이라는
뜻이다. 이 명상법은 붓다가 수행했던 방법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도
동남아, 인도의 승려들이 계속하고 있다. 서양에도 일부 소개되었다.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이 명상법은 깨달음의 경지로 갈 수도 있다.
건강, 마음의 안정, 스트레스의 해소, 여러 측면에서 우리 현대인에게
필요한 명상법이다. 위 세 가지 방법 중에서 한 가지를 골라 한동안은
한가지만 하는 것이 좋다.
7. 금식과 침묵의 날을 정한다.
일주일에 하루는 되도록 씹는 음식을 먹지 않고 견뎌
본다. 과즙이나 물만으로 그날을 지내고 침묵을 지킨다. 그리고 그날은
자연 속에 있도록 한다.
8. 한가지 행위에 열중한다
음식을
먹을 때는 먹는 데만, 공부할 때는 공부에만, 운전이나 운동, 사랑할
때까지도 그 한 가지 행위에 열중한다.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을 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음식을 먹을 때는 씹는 과정 전부를, 그리고 그 맛을,
음식의 형태와 색깔을, 그리고 씹힌 음식물이 목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모두 놓치지 않고 의식한다. 물론 음식을 오래 씹을수록 좋다.
9. 에너지를 발산한다
조용한 시간을 택해 자기
몸의 에너지를 발산한다. 누워서나 서서, 발이나 머리, 아니면 팔, 어떤
부분에서든 동작이 시작될 수 있도록 한다. 척추를 서서히 흔들어 뱀
같은 동작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고, 어린아이처럼 기어가는 동작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동작이든 그냥 자유롭게 몸에서 일어나도록
내버려 둔다. 점점 동적으로 변하여 춤이 된다. 좋은 음악을 틀어 놓고
하면 더욱 좋다. 그저 육체가 움직여지는 데로 춤을 춘다. 격렬하게
또는 차분히. 몸을 떨기도 하고 흔들기도 하고 마루를 구르거나 뜀뛰기를
해도 좋다. 이렇게 한두 시간 계속한 뒤 휴식을 취하고 본래의 상태로
돌아간다.
10. 소리를 지른다.
자연에 나가
마음껏 소리를 지른다. 우는 소리, 웃는 소리, 동물 소리, 신의 소리,
그 어떤 소리라도 좋다. 모든 소리를 자유롭게 크게도 작게도 내 본다.
마음껏 울거나 웃어도 좋다.
11. 즐겁게 받아들인다
모든
행위 또는 일을 즐거움으로 맞이한다. 즐겁게 일하고, 즐겁게 놀고,
즐겁게 산다. 모든 것을 즐거움의 대상으로 보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12. 풀고 용서한다
당신에게 한이 있는가? 한은
정신적인 암이다. 그것은 실제로 육체적인 암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우리에게 한이 남아 있는 한 우리의 영혼은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다.
그 한은 우리 영혼 일부에서 움츠리고 있기 때문이다. 암적인 요소,
그런 에너지를 '풀어놓으면(resease)' 우리는 그것에 더 이상 괴롭힘을
당하지 않아도 된다. 풀어놓는다는 것은 용서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용서를 통해 흔적없이 사라질 수 있다.
스트레스도
일종의 한이다. 모든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긴장은 육체의 근육의 형태에까지
영향을 준다. 정신적으로 풀면 육체적으로도 풀린다. 자신에게 한이나
분노, 그런 것이 계속 함께 있다면 그것을 일으킨 상황을 재현해 본다.
아무도 없는 방이나 야외에서 한다. 혼자 하는
것이 좋지만 믿을만한 친구가 있어 주는 정도는 괜찮다. 상황을 재현하는
도중 숨이 거칠어지거나 분노가 찾아오면 조용히 그 자리에서 중지하고
심호흡을 몇 번 한다.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도록 한다.
그래도 분노가 격정이 가라앉지 않으면, 행위로 발전시키도록 한다.
마음 속의 상대방을 때리고 싶다면 때린다. 베개나 벽을 그 상대방으로
이용한다. 상대방을 죽일 수도 있을 것이다. 소리지르고 싶으면 소리지른다.
그런 행위를 하는 자신을 지켜본다. 그 모든 상황을 의식하면서 해야
한다. 마침내 분노와 격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또는 지칠 때까지 계속한다.
그리고는 묻는다. 용서할 수 있는가? 그 일을, 상대방을, 그리고
자신을, 이 용서는 진실인가? 진실한 용서가 아니라는 판단이 들면 그
문제는 다시 다루어져야 한다. 모든 것을 진실로 용서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면 그때 용서의 편지를 쓴다. 마지막으로 그 용서의 편지마저도 불태워
없앤다.
몸이란 무엇인가?
어느 때는 거추장스럽기만 하고,
멀리 날아가고 싶은 것을 꽉 붙잡는 구속이라고 느껴진다. 어느 때는
그것만큼 소중한 것이 없고, 그것만이 진정한 나의 재산이라 느껴지기도
한다. 몸은 양면성을 지녔다.
몸은 물질이다. 물질이기에,
그것이 보전되기 위해선 다른 물질들을 필요로 한다. 이로 인하여 모든
욕망, 모든 세속적인 욕망이 생겨난다. 그래서 욕망에 사로잡혀 자신의
존재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면, 몸은 어서 벗어던져 버려야
할 것으로만 느껴진다. 그러나 몸은 소중한 것이다. 몸은 인생이라는
체험을 살게 해 주기 때문이다. 몸이 생긴다. 그것은 탄생이다. 몸이
없어진다. 그것은 죽음이다.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모든 체험이 그
속에서 이루어진다. 인생은 체험이다. 인생이란 무슨 최종적인 성과를
얻고, 무슨 최종적인 결과를 내기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체험, 체험하는 '과정'이다. 우리 인생에 단 하나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인생을 과정으로서 체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몸이 없이는
그 체험의 현장을 찾아다닐 수 없다. 그러기에 몸은 소중한 것이다.
몸은 물질이지만, 또한 가장 영적인 물질이다. 바로
영을 보전하는 신성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 신성한 장소는 죽는 그날까지
신성하게 보전해야 한다. 몸은 내 삶의 화두가 된다. 필요 이상의 욕망으로
스스로를 타락시키고 있지 않은지 늘 살피도록, 몸은 나에게 계기를
마련해 준다. 몸은, 어디까지나 나에게 허용되는 최소한의 욕망인지를
알려 주는 척도가 된다. 이 몸을 건강하게, 정결하게, 신성하게 보전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모두 지나친 욕망이요 세속적인 욕망이다.
이 몸은 나의 법당인 것이다. 나는 그 속에서 경건해진다.
나는 멍청한 듯 앉아 있을 때가 많다. 문득 오해하고 남들은 나에게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고 있느냐 한다.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나는 그냥 앉은 채로 몸의 에너지가 흐르는, 진동하는 것을
느끼고 있을 뿐이다. 그 감각과 은밀히 만나고 있을 뿐이다. 아무도,
그 어느 것도 그 사이에 끼어들 수 없다. 시간은 흐르나 나는 그 시간을
잊었다. 사람이 곁에 있으나 나는 그 사람을 잊었다. 나는 나의 몸에
커다란 감사를 느끼며 그냥 앉아 있는 것이다.
조용히 나를 내 몸에 맡겨
본다.
나의 몸은 점점 무거워진다.
나의 중심에서
열이 생긴다.
나의 맥박은 조용히 뛰고,
공기는 나를 숨쉬게 하고 있다.
나의 손발이
따뜻함을 느낀다.
나의 모두를 내 몸에 맡겨
버린다.
맥박은 조용하고 숨결은 유난하다.
나도
사라지고 내 몸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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