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이혼
여행
친척 중 얼마전 갑자기 이혼한 부부가 있었다.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던지 우리가 갈등의 내용을 미처 상세히 알기도 전에 이들은
합의이혼을 했고 이를 구청에 신고해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법적으로
이들은 남남이 되었고 이제 이들은 따로 살기로 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이들은 나이도 50대에 들어섰고 자녀들도 이미
다 대학에 진학한 상태로 별로 이혼할 것 같지 않은 부부였다.
이 부부는 1년전 쯤에 남편이 IMF로 정년퇴직인지 실직을 했고 그 후
집에서 지내다가 언제인가부터 집을 나가버려서 연락이 되지 않아 걱정을
했는데 후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제는 괜찮은 모양이다
하고 안심했던 부부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들의 이혼은 더욱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면서도 이 나이에 법적으로 이혼했다는 것이
무에 그리 중요한가? 현재의 마음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들을 포함해서 세 부부가 같이 1박2일로 서울 근교로
놀러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기회를 갖기로 했다.
술도
몇 잔 하고 분위기가 무르익어 화제가 구체적인 문제로 좁혀지자 매우
솔직한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들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남자쪽과 여자쪽의 입장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이다. 남자는 자기는
건강도 안 좋고 이제까지 돈 버느라고 고생했는데 여자쪽에서 좀 보살펴
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고, 여자쪽에서는 보살펴주려고 해도 따뜻한
마음 씀씀이라도 좀 보여주어야지
보살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도
매우 달랐다. 남자쪽은 자신이 이제 돈도 못 벌고 성적 만족도 못 시켜주니까
여자에게서 버림받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남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일과 섹스인데 이제 자기는 그 두 가지를 모두 잃어버렸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마당에 자존심 때문에라도 집안에서 가사일을 돕는다든지 하는
것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여자쪽은 돈이나 섹스가 뭐가 중요하냐
상대방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따뜻한 말 한 마디, 의사소통이 중요하지
않으냐고 반박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이야기가
나오자 이혼한 부부를 화해시키러 온 다른 부부의 남편이 남자쪽의 입장을
편드는 것이었다. 남자에게 섹스는 매우 중요하고 그것이 남자로서는
여성에 대한 의사소통의 통로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여자들은 섹스를
한다고 해도 의사소통을 하고 분위기를 만들고 해야지 섹스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들 했다. 그래서 이야기는 엉뚱하게도 남자 여자
사이의 집단적인 논쟁으로 미화되었다.
그날 밤 이야기는 두
사람 사이에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동안 두
사람 사이에 쌓인 앙금이 너무 많아서 이를 해소하기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보다 심각하게 다가왔던 문제는
대부분의 남자들이 이렇게 여자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이었다. 남자들의 생각이 여자들과 다르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 실체를 대면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양성평등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녀 사이의 의사소통을 통해 불신을 허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벽에 부딪친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같은 여성들끼리의 생각이 별로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중요성을 갖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의사소통을 통한 남녀간의 불신해소라는 과제가 어려운 일이지만 또한
멈출 수 없는 일임도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되었다.
【 여성신문-심영희/한양대
사회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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