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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여자와 남자의 만남에 대해 생각해보기 그 여자 만난 지 얼마나 됐니?---한 삼개월 됐어.---손은 잡았어?---아니 난 잘 안되더라.---니가 손잡을려면 1년도 더 걸리겠다.---난 안돼. 여자 만나면 무슨 얘기하냐?---난 할말도 없더라. 내가 좋아하는 중국영화 얘기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재미있는 농담을 알지도 못하고, 맨날 만나면 영어공부 얘기나 하고 그래. 그날 8:00시에 일어났다. 일어나면서 춘천을 생각했다. "춘천에 가면 먼저 소양강 댐에 가서 청평사 가는 배를 타고 배에서 김현식의 노래를 들으면서 담배를 피고 손을 잡고, 시간이 될지 몰라? 늦어도 9시까지는 집에 데려다 주어야 하는데." 세수를 한다. "면도는 어제 했으니까 됐지." 옷을 차려입고 지갑을 본다. "3만원이면 되겠지. 어제 책을 괜히 샀나? 책을 안 샀으면 4만원쯤 있었을텐데." 버스를 타고 잠실운동장 앞에서 내려서 지하철로 갈아타고 약속장소로 간다. "나야 지금 지하철역 앞이니까 나와" "꽃이나 사서 줄까(야 꽃을 사다주니까 되게 좋아하더라. 꽃값은 800원이 들었는데 효과는 800만원이더라니까.)어디에 꽃가게가 있나? 이 주위에는 없는 것 같은데 에이, 그냥 있자." "나 오늘 춘천 못 가요. 집에 일이 있어요. 3시까지 들어가야 돼요.(이러면 안되는데 카세트 찾느라고 광에까지 들어갔다 왔는데)---웃으며, 그래 그러면 영화나 한편 보자. 영호는 무얼 볼까?----늑대와의 춤을 보러 가요.----그 영화 괜찮다고 그러더라. 어디서 하지?---대한극장에서요.---지하철 타고 가면 되겠네. 가자." 여자와 남자는 지하철을 탄다. "좀 안으로 들어가자. 오늘은 사람이 적다. 아침에 학교 올 때는 어떠니?---난 아주 일찍 가거나 늦게 가니까 별로 사람은 없어요.---통계시험 잘 봤니?---저번에 봤다고 했잖아요.---아 그랬지, 오늘 날씨가 참 좋지 않니?---날씨가 참 따뜻한데요.---오늘 같은 날은 놀러 가는 사람도 참 많을 거야.---춘천에도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요?---(우리 둘은 더 간다고 춘천이 터지냐)침묵이 흐른다.---금방이네, 내리자." "지금 3회 예매하는데, 시간이 없으니까 딴것 보자. 일단 지하철로 내려가서 영화 광고를 보고 결정하지. 광란의 사랑이 재미있겠는데 저거 상탄 영화라고 그러던데---미저리 봐요.---그거 무서운 거 아니니?---싸이코 드라마라고 그러던 데요.---(무서운 영화는 싫은데) 그래 보러 가자. 신촌으로 가야지.---극장이 어딘 줄 알아요?---신촌에 있는 극장은 이름은 몰라도 위치는 다 아니까 찾아보면 있겠지." "어 여긴 줄 알았는데(난 만날 이래 오늘 좀 걷겠는데)---우리 물어보고 가요. 가게에서 극장의 위치를 물어본다.---너 좀 뻔뻔하다. 가게에서 어떻게 물어보니?---내가 어때서요? 난 좀 덜한 편이에요. 남들은 더한데요." 극장에서 표를 산다. "시간이 한 시간 남았는데 밥이나 먹자. 뭘 먹지?---국수 먹어요.---냉면 먹자." "이 집이 유명한 집이래. 물냉면 먹자. 물냉면 2그릇 주세요." "다 먹었으면 나가자.---돈은 내가 낼께요.---엄마한테 야단맞겠네.---왜요?---여자한테 밥 얻어먹으면 안된다고 그랬거든.---뭐 어때요." 영화가 시작된다. "(무서우면 안된는데) 어둠 속에서 (손을 어깨에 올려야 되나, 말이야 되나, 모르겠다.) 영화에서 무서운 장면이 나온다.(옥 괜히 봤어, 냉면 먹은 것 다 올라오겠다.)(얘는 참 열심히 보네. 지독해. 무섭지도 않나)(영화가 언제 끝나니? 빨리 좀 끝나라.)" 영화가 끝난다. "빨리 나가자. 재밌다.(괜히 봤네.)---이런 영화는 보고 나면 기억에 남아서 좋아요. 중국영화는 볼 때는 좋지만 보고 나면 남는 게 없어요." 극장을 나와서 "집에 가야지. 지하철 타고 가지? 지하철역까지 바래다줄게. 난 학교에 가야 되거든.---잘 가요---다음에 전화할게."
생각해 보기: 여자와 남자가 만나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는 대체로 빤하다. 만나면 차를 마시거나 밥을 먹고 영화를 보거나 술을 마신다. 또 자주 만난 경우에는 손을 잡거나 키스를 하는 경우도 있다. 만남 자체가 양자의 자발성에 의해서 이루러지기 때문에 만남에서 나타나는 행동양식에 대해서는 양쪽이 모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당연하다고 여기는 내용을 가만히 살펴보면 당연하지 않은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제 앞의 예를 중심으로 당연한 것으로 남녀의 만남에 있어서의 일상성의 규칙에 대하여 논의해 보자. 1. 여자와 남자가 만나는 경우에 있어서 주로 연락을 하는 쪽은 남자쪽이다. 남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계획에 따라서 시간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즉 약속시간을 정하는 주체는 남자인 것이다. 남자가 주로 연락을 한다는 사실은 남녀의 만남에 대한 사회적 통념의 불균등성에 기초한다. 남자가 여자를 만난다는 것은 남자에게 있어서 자연스런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반면 여자가 남자를 만나는 것에 대해서 적극성을 갖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여자답지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불균등성은 여자에게 있어서는 물론 행동의 제약을 주지만 남자에게 있어서도 일종의 압박으로 다가온다. 남자에게 있어서 여자의 시간 없다는 대답은 앞으로 만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만남이 자주 이루어진 경우에도 남자는 항상 여자에 대한 배려를 해야 한다. 즉 만남의 공백이 너무 길지나 않는지, 얼마간의 간격이 적당한지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남자들 사이의 통념은 약속시간을 되도록 이면 멀리 잡으라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여자가 더욱 더 만남을 기다리게 된다는 것이다. 2. 앞의 예에서 여자는 줄곧 존댓말을 사용하는 반면 남자는 반말을 사용한다. 남녀의 만남이 처음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양쪽 모두 존댓말을 사용한다. 양쪽이 나이가 동일한 경우에는 모두 반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의 남녀의 만남은 여자가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여자는 존댓말을 사용한다. 존댓말을 쓴다는 것은 상대방이 지위가 높다거나 자신보다 뛰어나다고 하는 가정에 기초한다고 생각되는데 농경사회에 있어서는 당연히 나이의 많음이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나이에 기초한 차별이 남녀의 관계에 개입하여 여자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남자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이다. 이런 어법이 내는 효과는 어떤 것일까? 3.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경우에 있어서 돈은 주로 남자가 쓴다. 앞의 예에서 여자가 식대를 내는데 남자는 창피함을 느낀다. 한편으로는 남자가 돈을 많이 쓴다는 사실이 남자의 여자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만남에 있어서 경제적인 능력에 무관하게 여자가 일방적으로 배려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문제가 있다. 여자에게 있어서는 남자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함으로써 남녀의 균형적인 관계를 이룰 수 없다는 문제가 발생하며 남자에게 있어서는 경제적 부담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나 결혼 후에 여자가 남자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끔 하는 원인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4. 데이트를 한다고 하면 주변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참견하려는 사람들이 생긴다. 우선 또래들의 반응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대개 남자의 친구들은 손을 잡았냐느니 키스를 해보았느니를 묻는다. 육체적 접촉의 단계에 따라 친밀성의 정도를 가늠해 보려는 속셈이리라. 그러나 그런 질문은 당사자를 긴장하게 만들고 성적인 것에 별로 개의치 않던 사람까지도 데이트하는 여자와 언제 어떻게 접촉을 시도할지를 계획하는 등 그 문제에 집착하게 강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리고 '여자를 꼬시는 요령'을 서로 일러주는데 이 요령은 대개가 남녀가 얕은 사랑놀이를 계속하게 하는 그야말로 '요령'일 뿐이다. 여자의 친구들은 남자상대가 잘생겼는지, 돈이 많은지, 꽃과 선물을 자연스럽게 줄줄 아는 낭만파인지, 여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민주적 인간인지를 알아보면서, 이를 결혼문제와 직결시켜 추론하는 경향을 보이는 듯. 아니면 적어도 '추억 만들기'에 좋은 상대인지 결혼상대자로 좋은 남자인지를 구별해 주는 일에 열을 올린다고 한다. 부모들의 관심 역시 두 남녀의 관계를 성급하게 종결시키는 데 한 몫을 한다. 결국 중고교 시절을 남녀유별세계(실은 인간 부재의 입시지옥) 속에서 보내고 대학에 들어와 부푼 가슴으로 이 여자 저 여자를 조급하게 만나다가 제대로 마음 맞는 이성친구 하나 가져보지 못한 채 지친 상태에서, 어머니의 반강요 상황에서 '중매반, 연애반'이라는 결혼으로 골인하는 것이 현재 대학생 상당수가 겪는 불행한 운명이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여자와 남자의 만남은 평등함을 기초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불균등성에 기초하고 있다. 이 불균등성은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에게도 일종의 짐으로 나타난다. 한편의 다른 한편에 대한 일방적 우위처럼 보이는 현상 속에서 우위라고 생각되는 쪽에 있어서의 부담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쪽 모두 짐을 벗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락을 하고 상호간에 어법에 있어서 균형을 취하고 자신의 비용은 자신이 계산하여야 한다. 그리고 더이상 도식화된 조언을 듣지 말고 자기자신이기를! (김영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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