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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젊음 - 그 만남의 방식 그때를 기억하시나요. 덕수궁 앞에서 손에 든 빨간 장미 한 송이를 신호 삼아 상대를 기다리던 때를. 혹은 당신이 꺼내놓은 탁자 위의 소지품을 어여쁜 여대생이나 멋진 남학생이 고르기를 가슴 졸이던 때를. 빛바랜 사진처럼 희미한, 하지만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그 아련한 추억을. 꽃피는 봄, 젊은 대학생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미팅에 나선다. 가슴 저릿한 사랑을 꿈꾸며. 미팅은 분명 젊음의 `영원한 특권'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듯 젊은이들이 만나는 방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2-3년 전부터 유행하고 있는 `사랑의 짝대기팅'은 이런 변화를 잘 보여준다. 남녀 여럿이 `하나 둘 셋' 신호와 함께 마음에 드는 상대방을 향해 손가락을 일제히 내뻗는다. 그래서 맞는 사람끼리 짝짓기를 한다. 서로 맞지 않으면 창피하다고 해서 `쪽팔려팅'이라고도 불린다. 70-80년대 종이쪽지에 비밀스럽게 적어 짝을 맞추던 방식과는 천양지차다. 김나영(22·이화여대3)씨는 “우리는 솔직하게 맘에 드는 사람을 맘에 든다고 표현한다. 굳이 숨기고 쑥스러워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말했다. `노예팅'에선 이런 솔직함이 지나칠 정도로 표현된다. 노예팅은 경매다. 남자가 재롱을 피우며 자신을 소개하면, 여자들이 나름대로 `값'을 매긴다. 최고액수를 써내는 사람에게 남자는 `낙찰된다.' "지난해 가을 한 여대와 함께 엠티(MT)를 가 각각 20명씩이나 되는 남녀를 8개조로 나누기 위해 노예팅을 했다. 남자들은 `가진 게 돈밖에 없어요' `춤이라는 춤은 전부 출 수 있어요'라고 말하거나, 건강을 과시하기 위해 팔굽혀펴기를 하기도 했다. 여자들은 `떨이'에서부터 2만원 정도까지 배팅을 했는데 분위기를 푸는 데 좋았다.” 한양대 한호철(23·4학년)씨의 경험담이다. 물론 이런 방식들이 흔하지는 않다. 아직도 80년대 말부터 유행한 학고팅(학력고사팅)을 이용하는 학생들이 주류를 이룬다. 학고팅은 지망순서를 적어 짝을 짓는 방식이다. 다음달 개봉하는 영화 <비트>에서 주인공 남녀의 만남을 노예팅으로 설정한 영화감독 김성수(35)씨는 “요즘 학생들은 표현에 거침이 없다. 옛날처럼 쑥스러워하지 않는다. 특히 여학생들이 대담해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솔직함은 대개 일회적인 만남으로 그친다. `솔직하게'그날 하루 만나서 즐기고 헤어지는 식이다. 애프터(나중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를 신청하는 것은 촌스러운 일로 취급받는다. 윤지영(20·카톨릭대2)씨는 “대부분이 그날 하루 재미있게 놀기 위해서 나간다.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기 위해 미팅을 한다는 학생은 드물다. 다음에 만날 걸 전제로 하는 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짝을 짓지 않는 미팅이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눈에 반할만한 이상형이 있으면 모를까, 대부분은 `함께 놀자'는 쪽이다. 그래야만 노래방이나 락카페에 가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출 수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최창호(사이콜로지 코리아 소장)씨는 이런 경향에 대해“남자들은 대개 그날 즐기고 사랑을 나누는 `유희적 사랑'을, 여자들은 계산하고 재는 사랑인 `실용적 사랑'을 하려는 게 일반적이었다”며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남녀 모두 유희적 사랑 쪽으로 기우는 것 같다”고 설명한다. 대중소비문화의 발달과 성개방풍조가 이런 현상을 낳았다는 것이다. 대중문화평론가 이재현(39)씨의 해석은 이렇다. “미팅은 한국사회에서 성적 파트너를 만나는 구조와 비용의 문제가 만들어낸 만남의 한 방식이다. 과거에는 성적 파트너를 만나는 구조가 자유스럽지 않았고 돈도 많이 들었다. 이런 탓에 좀더 자유스럽게 행동할 수 있는 대학생들이 `특권'처럼 시작한 게 미팅이다.” 그렇다면 분명 요즘 젊은 남녀의 만남에선 `특권'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미팅이라는 형식은 이제 젊은이들 사이에 서서히 퇴조하는 추세다. 부킹이나 컴퓨터통신 등 새로운 만남의 방식들이 속속 등장한다. 이성교제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되면서 동아리나 학과에서 자연스럽게 짝을 짓는 학생들도 늘어났다. 부킹은 지난해부터 부쩍 늘어난 신종 미팅이다. 방식은 이렇다. 주로 강남역 근처에 몰려있는 나이트클럽이나 디스코텍, 혹은 호텔나이트크럽에서 웨이터가 여자의 손을 붙잡아 남자테이블에 앉힌다. 마음에 들면 자리를 함께 하고, 그렇지 않으면 술을 한잔따라준 뒤 보낸다. 조아무개(22·고려대3)씨는 “미팅에서는 맘에 드는 상대를 만날 확률이 적다. 반면 부킹에선 예쁜 여자나 멋진 남자들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한 학생도 “물 좋은 나이트 클럽은 토요일 오후만 되면 입장하려는 젊은이들로 장사진을 이룬다”고 말했다. 컴퓨터통신에서 `채팅'을 통한 만남은 많은 얘기를 나눈 뒤 얼굴을 마주보기 때문에 연인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컴퓨터 통신에서 약속을 정하는 `번개팅'은 이제 신세대들 사이에 대중적인 만남의 방식으로 자리잡았다. 사회학자 정준영(35) 박사는 “미팅은 과거에 우리 사회에서 젊은 남녀가 만나는 공식적인 첫 통로였다. 하지만 요즘엔 중고등학교때부터 교제의 기회가 많아졌다. 남녀가 만나는 것이 상대적으로 자연스러워졌다. 굳이 대학 때 미팅이라는 형식을 취하지 않아도 된다”고 지적했다. 시대가 변하고 만남도 변했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대우그룹 신상호(32)씨는 “남녀간 만남이 솔직해지고 자연스러워지는 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과거의 순수하고 낭만적인 모습이 그립다”고 말했다. [여성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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