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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웬디 콤플렉스'에 대하여 '웬디 딜레마' 또는 '웬디 콤플렉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미국의 정신과 의사 댄 카일 리가 낸 책 「웬디 딜레마」에서 처음 선보인 말이다. 이 책에는 '여성판 피터팬 시드롬'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피터팬 신드롬이란 남자가 어른이 돼서도 어린애처럼 황당한 공상에 빠지고 응석받이 노릇하는 하는 것을 말한다. 이 장에서는 댄 카일리의 학설을 참고 삼아 특히, 한국 여성들이 빠지기 쉬운 '웬디 콤플렉스'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J.M. 베리의 희곡 「피터팬」에는 대조적인 두 여성이 등장한다. 한 사람은 자유롭고 활동적인 요정인 '팅커'이고, 다른 한 사람은 어머니 같은 태도로 피터팬을 대하는 '웬디'이다. '웬디'와 '팅커'는 모두 피터팬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성격은 정반대로 다르다. '웬디'는 피터팬을 극도의 책임감을 가지고 보호해 주면서도, 실컷 불평불만을 늘어놓은 다음에야 직성이 풀리는 여성이다. 그러나 '팅커'는 피터팬의 어머니 역을 거수하고 그의 어린애 같은 약점을 적극적으로 고쳐주는 여성이다. 또 '웬디'는 얌전하고 소극적이라서 피터팬의 변덕스로운 행동을 대충 용납해 주고 있지만, '팅커'는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든지 하고 마는 성격이라 피터팬의 변덕스러운 행동을 조금도 용납하지 않는다. 댄 카일리는 팅커형의 여성이 남성의 좋은 반려자가 되는 반면, 웬디형의 여성은 사회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피터팬 못지 않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웬디 딜레마'를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럼 먼저 웬디형 여성들의 심층 기저를 살펴보기로 하자. 웬디의 내면에는 두 가지 모습이 공존하고 있다. 하나는 '상냥하고 겁 많은 소녀'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겁 많은 소녀를 지키기 위한 '과보호적인 어머니'다 그런데 웬디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겁 많고 나약한 소녀'의 모습에서 비롯된다. 요컨대 웬디 딜레마에 빠지는 여성은 어떤 형태로든 자기가 남에게 거부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가 남보다 열등하다는 내면적 강박관념 때문에 부정적인 자기 이미지를 갖고 있다. 내면적으로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는 여성은 결국 사회적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웬디형의 여성은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상대방의 인정을 받기 위해 전적으로 상대방이 기분을 맞춰주지 않으면 안 된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사회적 이미지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다시 말해서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강박관념에 빠져든 나머지, 자신의 아이덴티티(identitiy)를 상실하게 된다. 언제나 남의 눈치만 살피다 보니 자기자신에 대한 긍지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웬디형 여성은 피터팬 같은 '철부지' 남성을 일부러 선택하고, 어머니 역할을 연출하며 스스로 만족하기 시작한다.
첫째, 자기에게 불리한 것은 모두 부정하는 유아성(幼兒性)이다. 이것은 일종의 현실도피 심리인데, 때로는 자신의 약점이 노출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을 정반대의 형태로 은폐하려 드는 극단적 완벽주의'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완벽주의의 정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내면의 고통도 그만큼 심해진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 자체를 직시해야 한다는 점인데,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의 생각이나 자기기만 또는 남에 대한 의존욕구 때문에 사태는 악화되기만 한다. 둘째,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과보호('過保護)'이다. 과보호와 애정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하지 않는 인간관계에서는 과보호가 생겨나기 쉽다. 과보호는 상대방의 개성을 억압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약점을 숨기고 상대방의 인격을 무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웬디형 여성은 상대방 남성이 약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상하게도 위안을 느낀다. 상대방이 자기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에게 거부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불안감은 일종의 열등감에서 나온다. 셋째, 지나친 '남성 의존증'이다. 이런 부류의 여성들에게는 고독을 견디는 용기가 없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웬디는 혼자 되는 것이 가장 두렵기 때문에 상대를 철저히 과보호하여 자기에게 밀착시키려고 하다. 이런 남성의존형 웬디의 특징은 부정적 의미의 '나르시시즘'과 '질투'이다. 즉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소유욕과 다른 사람도 자기 소유물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이, 상대방을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상대방에게 사로잡혀 있는 한, 자신의 걱정거리를 상대방과의 이성적 대화를 통해 해결하기는 어렵다. 이런 부류의 여성들은 자신의 인생 목표를 오직 상대방 남성을 '소유'하는 데만 두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 불만의 해결보다는 불만의 표시에 기쁨을 느낀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애인이나 배우자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으므로, 불만을 솔직하게 터뜨리는 것도 애정표현의 일부이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필수적 요소이기도 한다. 그러나 웬디의 불평불만은 그런 건전한 성격의 것이 아니다. 실속 없는 말다툼이 되풀이되면서 험악한 감정으로 비화하게 되는 경우가 잦다. 그래서 가끔 애인이나 남편으로부터 모진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그것을 감내해 내는 웬디형 여성의 마음속에는 자신을 순교자로 생각하며 기뻐하는 심리와, 상대방을 화나게 만들어 평소의 울분을 풀어보려는 욕구가 함께 잠재돼 있다. 다섯째, 자기가 보기엔 아무 것도 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되는 남자를 위해 설명을 되풀이하는 버릇이다. 설명벽(說明癖)이 강한 웬디는 상대방의 심리를 자기 마음대로 읽어낸 뒤 동기를 추측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버릇에는 성(性)차별주의, 즉 '여존남비(女尊男卑)사상'이 근본 동기를 형성하고 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일단 성차별주의에 감염되면, 서로간의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져 두 사람의 관계는 파괴되고 만다. 이런 싸움을 멈추기 위해서는 우선 서로가, 선천적으로 우월한 성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에 동의해야 한다. 여섯째, 순교자를 자처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자기 비난'과 '자기 희생'의 두 가지 심리가 작용한다. 우선 '자기 비난'의 경우, 웬디형 여성들은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또한 '반대 심리'현상이 생겨나기도 하는데, 이를테면 정반대의 효과, 즉 상대방의 화를 돋우는 것을 노려 일부러 극단적인 행동을 휘하는 일도 있다. 이런 심리가 생기면 '자기 비난'이라는 '웬디 반응'은 다른 사람을 움직이고 조종하는 기능을 가지게 된다. '자기 비난'단계에서 좀더 발전하면 '자기 희생'단계에 이르게 되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인 순교자 행세가 시작된다. 이런 '자기 희생'이야말로 웬디 반응의 본래 모습이며 그릇된 어머니 역할의 중요한 징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다. ① 동정을 받기 위해 자기 희생을 연출하는 것. ② 자신의 진실한 모습과 대결하는 것이 무서워 자기 연민과 자기 비하에 매달림으로써 자신을 방어하는 것. ③ 자신의 무력감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 ④ 끊임없이 자신을 따라 다니는 절망감이나 우울감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나 조언을 거절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일곱째, 사랑에 대한 갈망 때문에 오히려 상대방을 괴롭힌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관심을 끌려는 노력이 극단적으로 왜곡된 형태다. 최악의 경우엔 섹스의 거부에까지 이르는 수가 있다. 여덟째, 더 이상 자기의 어머니 역할이 소용없어지는 '궁지'에 몰리게 되면, 웬디형 여성은 자기 모순을 일으켜 정서적 혼란에 빠지기 시작한다. 이는 진실을 억지로 부정하고 호·불호(好·不好)와 선·악을 구별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현상이다. 하지만 그런 정서적 혼란이 자괴감(自愧感) 섞인 진지한 고뇌로 이어지게 되면, 오히려 변신의 도약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
웬디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첫 번째 필수 조건은 '부모와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소녀들은 어머니의 마음에 드는 완벽한 딸이 돼보려고 노력한다. 이 노력은 때때로 아버지에 대해 어머니 역할을 대신 연기하는 것으로 바뀌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완벽주의는 언제나 참담한 패배감을 낳는다. 웬디 현상은 사실 이 시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우선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고, 마음속에 잠재된 과거, 특히 부모에 대한 속박감을 완전히 정리·청산해 두어야 한다. 이때 자기의 과거를 진지하게 분석하면 할수록, 자기가 지나온 인생에 대한 후회나 억울감 들이 생겨나게 된다. 하지만 오직 독한 마음으로 그런 슬픔을 당당하게 반추하며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 일단 실컷 슬픔하며 자기가 겪은 정신적 상처를 확인하고 나면, 과거의 심리적 상처는 저절로 치유되고 새로운 힘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첫째는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 정신'이다. 동정이나 아첨으로서가 아니라 무엇이든 자연스럽게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가 되도록 애써야 한다. 언젠가 반드시 상대방도 그렇게 해주리라 믿고서 마음껏 양보해 주는 아량이 필요하다. 둘째는 인내와 공감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공감할 수 있게 되면 약간의 불편함이나 마음의 상처는 참아낼 수 있다. 셋째는 신뢰감이다. 어느 쪽이 넘어져도 반드시 한 쪽이 일으켜 주리라는 믿음을 갖고서 사랑에 임할 것. 넷째는 상대방의 성장배경에 대한 이해이다. 남녀는 서로 다른 개성적 인격체이므로, 상대방한테는 그 사람 나름대로의 욕구가 있고 그것이 자기와 상반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가정환경, 경험, 교육, 취미, 친구 등이 나와는 다른 세계에서 성장한 상대방의 개성에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 된다. 다섯째는 분별력이다. 의견이나 사고방식, 인생관 등을 서로 자유롭게 개진해 가는 사이에, 설사 견해 차이가 있더라도 일방적으로 상대방을 심판해서는 안 된다. 사실을 사실로서 인정 할 수 있는 현실감각과 분별력이 필요하다. 여섯째는 현실주의이다. 두 사람의 애정생활이 잘 돌아가지 않을 경우에도 그런 사실 자체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서로간의 갈등이나 의견 대립을 모두 완벽하게 해결하려고 들면 안 된다. 더 이상 시시콜콜 따져가며 얘기해 봤자 좋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어느 정도 갈등 요인이 남았다 하더라도 더 이상의 험악한 갈등으로 번지지는 않는다. 일곱째는 육체적 친밀감이다. 이성간에 느낄 수 있는 사랑의 기쁨을 스스럼없이 표현하라. 특히 잦은 페팅과 잦은 키스, 잦은 포옹은 필수적이다. 여덟째, '운명적 인연'에의 믿음이다. "절대로 헤어질 순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설사 심각한 트러블이 생기더라도 불가사의한 '숙명적 인연' 같은 게 개입하여 두 사람의 관계를 지속시켜 줄 거라고 믿는 것이 좋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요즘처럼 남녀가 서로 싸우는 시대도 드문 것 같다. 여자들은 여자들대로 "남자는 역시 별수 없어, 속이 밴댕이 속처럼 좁거든" 따위의 욕을 서슴없이 하고 있고, 남자들은 남자들대로 "여자는 별 수 없는 새대가리들이다" 따위의 욕을 거침없이 내 뱉고 있으니 말이다. 여성 상위냐, 남성 상위냐의 문제가 이젠 더 이상 논의의 초점이 돼서는 안 된다. 남녀는 서로가 서로를 '보완'해야지 '적대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남녀에게 공통되는 웬디 콤플렉스의 요점은 바로 "내가 개를 돌봐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심리인데, 이런 강박심리의 이면에는 자기자신의 열등감을 일종의 '보스(boss) 행세'로 보상받으려는 의도가 내재돼 있다. 꼭 남녀간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직장에서의 상하관계나 학교에서의 선후배관계 등에도 '웬디' 같은 사람이 꼭 끼여들어 문제를 일으킨다. 그들은 마치 자기가 동료나 후배의 모든 걱정거리를 도맡아 해결해 주는 역할을 맡은 양, 은근히 목소리를 높이며 헤게모니를 잡으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정치·경제·문화계의 지배엘리트 중에도 수없이 많다. 이런 '웬디'형의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우리 나라의 민주화는 발전의 속도가 더욱 느려질 것이 틀림없다. 사랑이든 여타의 인간관계든, '민주적 인간관계'는 서로의 개성과 주체성을 인정해 주는 '개인주의적 풍토(이기주의와 개인주의를 혼동하지 말라)'에서만 이룩될 수 있다. 각자의 세계관, 각자의 개성적 기호, 각자의 성격적 특이성, 그리고 각자의 관능적 취향····. 이런 것들이 자유롭게 표현되고 존중되는 사회가 되는 것은 아직도 요원한 것 같아 나는 우울하다. 남보다 시대를 앞서가고 남보다 튀는 생각을 한다고 해도 매도 테러를 당하지 않는 사회가 진짜 자유민주주의 사회다. 항상 상대방의 장점보다 약점을 찾아내려 하고, 끊임없는 감시의 눈길을 보내며 상대방을 중상할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엔 너무나 많다.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언제나 자유와 민주를 외쳐대는 이 시대의 수많은 이중인격자들이 사라지지 않는 하, '상호간의 사랑과 이해에 기초한 민주적 사회 분위기'의 확립은 어려울 것 같다. <마광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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