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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 사랑의 의미 사랑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 그렇게 쉽지는 않는 모양이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의 [사랑의 기술]이 여러 사람에 의하여 번역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해동안 판매 부수 상위권의 목록에 들어있는 것만 보아도 사람들은 사랑의 정체 혹은 방법에 대하여 알고 싶은 것이 많은 것 같다. 왜 누구는 사랑을 쉽게 잘 하고, 누구는 여러 번씩이나 실패하는가? 왜 누구는 행복한 사랑을 오래도록 즐기는데, 누구는 항상 불화가 잦는가? 사랑하는 기술이나 능력이 사람마다 다른가? 그것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인가, 아니면 후천적으로 획득(학습)되는 것인가? 사랑하는 능력이 성장과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가? 사랑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가, 아니면 사랑은 모두 같은 모양인가? 사랑의 능력과 정신건강과의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사랑의 기술도 훈련하면 나아질 수 있는가? 그런 훈련은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 사랑을 하다 실패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결혼은 사랑과 별개인가, 결혼은 사랑의 무덤인가? 사랑이 무엇이길래, 어떤 사람들은 사랑을 위해 명예도 버리고 출세도 마다하는가 하면, 심지어 목숨까지 버리기도 한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했듯이, 사랑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전부를 기꺼이 바치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 같은 사랑을 일생 동안 여러 번 체험해 보았다는 행복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다는 불행한 사람도 있다. 사랑이 없으면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다고 기를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까짓 것 없어도 얼마든지 마음 편히 잘살 수 있다고 큰소리 치는 사람도 있다. 정말 그럴까? 도대체 '사랑'이 무엇이길래, 그것을 얻으면 온 천하를 다 얻은 것처럼 의기양양해지고 세상이 달라 보이며, 그것을 잃으면 모든 존재가치를 다 상실한 것처럼 절망과 불행감에 빠져 버리는가? 철학자 플라톤은 "누구를 사랑한다 함은 그 사람 속에 있는 미(美)와 선(善)의 진수를 알아보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20세기에 들어와 사랑의 규율을 작성한 바 있는 카펠라누스는 "사랑이란 이성(異性)의 미(美)를 보거나 너무 생각한 나머지 생겨나는 일종의 타고난 고통"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근래에 와서 어느 정도 심리학적 색채를 가미하여 사랑을 논한 사람으로 에리히 프롬을 들 수 있겠는데, 원래 이 사람은 소위 <신 프로이드>학파에 속하는 정신분석가이다. 그의 저서 {사랑의 기술}은 한국에서도 번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는, 사랑에 대한 '고전'이라고 할 만한 책으로서, 인간에 대한 프롬의 철학적 견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저서에서 그는 "인간이란 근본적으로 고독한 존재이며, 그 고독감과 공허감을 극복하기 위하여 사람은 사랑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人)' 자(字)를 풀이할 때 사람이란 서로 의지하여 살게끔 만들어진 존재라는 뜻임을 감안한다면, 프롬이 말한 인간의 조건으로서의 고독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사랑이 그렇게 목적론적인 것인가 하는 데 대해서는 다른 견해도 없지 않을 것이다. 프롬의 사랑에 대한 논술은 어떻게 보면 매우 도덕적이며 철학적이다. 한편, 현대 심리학자들은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하여 보다 구체적이며 행동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며, 또 어떻게 행동하는가 하는 것을 소위 육하원칙에 의하여 밝히려 한다. 이러한 접근방법에서 보면 고독이 인간의 기본 조건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프롬의 이론도 매우 실제적이고 심리학적이다. 첫째로, 사랑이란 상대방의 생활과 성장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며, 둘째로 사랑은 상대방으로부터 표현되거나 표현되지 않은 욕구에 대한 자발적 반응이며, 셋째로 사랑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며 그의 개성을 존중하는 태도이며, 그리고 넷째로 사랑은 이심전심으로 상대방이 무엇을 느끼며 무엇을 원하는지를 아는 상태(혹은 행동)라고 프롬은 갈파(喝破)했다. 이 주장은 사랑에 대한 많은 실험적 연구가 수행되고 있는 현재까지도 진실이며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 주변을 잠깐만 돌아보아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의 성장과 존재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오직 자신의 욕심과 이익에만 집착하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의 욕구에 따라 행동을 하기보다는 자신의 일시적인 충동과 변덕으로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려 하는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좋아하기보다는 자기가 원하는 형의 사람으로 바뀌어지기를 또한 요구하지 않는가?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그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헤아려 보기보다는 오직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만 집착한 나머지 자아도취에 빠져 있으면서, 그것을 사랑이라고 태연하게 주장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은 어떤 철학적 혹은 현학적인 개념의 정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보다 행복한 사랑을 하기 위한 실제적인 목적을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흔히 부부 중 한 사람은 배우자를 매우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전혀 사랑 받고 있지 않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남편은 매달 월급봉투를 아내에게 충실히 갖다 주고, 특별히 외박하거나 외도하지도 않으며, 일요일이면 집에서 가족과 함께 텔레비전이나 보며 쉬는 생활이 아내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내는 그런 것이 무슨 사랑이냐고 주장한다. 아내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어색하지 않게 그리고 너무 드물지 않게 실감나는 사랑의 말을 속삭이며, 가끔씩 꽃이나 선물을 사다 주고 정답게 애무하며, 때로는 분위기 있는 곳에 가서 식사도 하는 그런 재치 있고 황홀해지게 하는 남편의 행동을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경우 남편의 사랑은 착각인가? 아내가 주장하는 사랑은 한낱 유치한 사춘기 소녀적인 낭만인가? 그 어느 것도 결코 아니다. 그들은 모두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각자가 생각하는 '사랑의 의미'나 '사랑하는 방법'이 서로 다를 뿐이다. 이렇게 본다면 사랑이란 단순히 하나의 감정만이 아니라 그것은 사랑하는 행동이란 어떤 것이며 어떤 행동은 사랑과 무관하다는 인지적 개념이다. 이런 의미로 볼 때 사랑이란, 그 사람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곧 사랑이라는 뜻도 된다. 그렇다면 어느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고 할 때, 우리는 각자가 생각하는 사랑의 의미를 알아보고 서로 알릴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각자가 생각하는 사랑의 의미가 조금씩, 때로는 크게 다르기 때문에 서로간에 사랑을 하면서도 상대로부터 자신의 사랑을 인정받지 못하거나 혹은 오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각자가 생각하고 있는 사랑의 의미를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렇지 못할 때에는 성공적인 사랑의 결합이 실제로 불가능할 수도 있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이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있는 사랑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의식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그 사람만의 고유한 사랑의 의미를 확인하는 일이다. 여기에서 '고유'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사랑의 의미가 그 사람의 성장과정 및 가정환경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 김 중 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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