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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 사랑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 이상이다 사랑의 본질을 분석하는 것은 오늘날 진정한 사랑이 드물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다. 또한 그러한 사회적 조건을 비판하는 일이다. 개인적인 현상일 뿐만 아니라 보편적 현상인 사랑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통찰에 근거하는 이성적인 믿음이다. - 에리히 프롬-
뜻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엄숙한 주제를 아주 간단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사랑이 운명적으로 다가오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린다. 사랑을 위해 무엇인가 헌신하지 않아도 일어나는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의 사건으로서, 동화 속의 왕자님에의한 일종의 구원으로서 사랑을 기다리는 것은 숙명적인 오류가 아닐 수 없다. 사랑을 불시의 타격처럼 들이닥치는 강력한 운명적 사건, 그래서 그것이 와 주었으면 하고 수동적으로 기대하는 사건이라고 보는 견해가 예상외로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사랑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은 비참한 자세다. 사랑은 수동성 가운데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능동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능동성이라면 그것은 하나의 행위이거나 배워 익힐 수 있는 덕목이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중요한 것은 사랑하려는 마음의 준비 자세다. 그러한 적극적인 자세가 있어야 사랑이 우리의 현실적인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전개될 수 있다. 우리는 외국어나 계산법을 배워 익히고, 물리학이나 생물학, 종교 등에 대해 학교에서 공부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랑에 대해서는 신화가 되어버린 몇 가지 커다란 오해와 편견 이외에는 거의 없다시피하다. 사랑은 개인적인 운명이기에 배워 익힐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견해가 널리 퍼져 있다. 사랑에 대해서는 스스로에게만 의지할 수 있을 뿐이다. 부모가 전해 준 생각들은 빈번히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다. 사랑에 대해서는 웃음거리 삼아 이야기되든지 아니면 속물적 과채에 감싸여 그려지기 일쑤이다. 우리는 사랑의 심리학적 배경에 대해서,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능동적으로 실현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으로부터는 전혀 듣지 못한다. 사랑은 교과목이 아니다. 그 어디서도 가르치지 않는다. 서점이나 도서관에서는 기껏 '결혼과 동반 관계'라는 주제에 대한 성의 기술이나 조언서를 찾을 수 있을 뿐이다. 사랑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전개되는가, 혹은 어떻게 전개하는 것이 좋은가, 어떻게 그것을 알게 되며 어떻게 사랑의 가능성을 배워 익히는가에 대해 우리는 거의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심리학자들과 심리치료 전문가들이 쓴 책들 중에서 사랑을 주제로 한 단 한 권의 책은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다. 프롬에게 있어서 사랑은 배워 익혀야 하는 하나의 기술이다. 그것도 이론이 아니라 실행으로서, 에리히 프롬은 사랑이란 인간 활동의 하나이고, 자신의 인간적 실존의 문제를 제기하고 대답을 얻기 위해 배워 익힐 수 있으며 또 그래야만 하는 하나의 능동성이라는 사실을 절실하게 지적한 최초의 심리학자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책에 대한 보완으로서 프롬의 책을 읽어 보기를 권하고 싶다. 특히 {사랑의 기술} 중에서 [우리 시대 서구 사회에서의 사랑과 그 소멸], [사랑의 실행]이라는 제목을 단 마지막 두장을 권한다. 사랑은 각자가 날마다 노력해야 하는 실제 운용의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을 때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면서 심리학적 인식을 실제에 적용할 때의 결과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이런 저런 말들은 내 일상에 실제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떻게 나는 내 자신을 위해 좀더 집중적으로 사랑을 찾아내고 익힐 것인가?] 누구나 사랑에 대해서 개인적인 경험을 갖고 있으며, 이미 일정한 인식 상태에 도달해 있다. 그런데 그 인식은 더욱 넓혀질 수 있다.이 책의 과제는 사랑에 관한 완벽한 이론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의도는 당신으로 하여금 하나의 현상으로서 사랑이라는 테마에 대해 좀더 깊이있게, 능동적으로 생각해 보도록 자극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배움의 자극을 주고 싶은 것이다. 틀에 갇힌 일상 속에서는 여기서 당신이 읽고 있는 것을 금방 다시 잊어버릴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순간적으로는 무엇인가 환한 깨달음이 있지만 몇 시간 뒤에는 옛날의 편견과 관념들로 다시 뒤덮여 몽롱해져 버린다. 지금 분명한 것이 나중에 다시 불분명해지거나 심지어 멍청한 생각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감각과 정신이 활짝 열린 적극적인 태도와 자세가 절실히 요청된다. 만약 당신이 사랑에 대해 좀더 알고 그것을 자신의 삶을 위해 유익한 것으로 승화시키고자 한다면 감각과 정신이 활짝 열린 적극적 태도와 자세를 가져야 하리라. 무엇인가 불분명한 게 있으면 가장자리에 메모를 해도 좋다. 그리고는 친구들과 거기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산책을하며 스스로 좀더 생각해 보라. 사랑은 하나의 기술이며 노력이 수반되는 구체적 작업을 통해 얻어진다. 당신이 그것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그냥 품속으로 떨어져 들어와 주는 일은 없다. 당신은 물론 계속해서 수동성을 고집하고 모든 것이 당신을 향하여 오게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옛날로 되돌아가고 만다. 만일 그런걸 원하지 않는다면, 사랑이 당신의 전존재와 영혼의 능동적 활동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더 이상 수동적일 수 없을 것이다. 그것에 골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랑에 대해 좀더 알고 또 좀더 체험하고 싶어할 것이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당신에게 그런 능동성에의 자극을 주고 싶다. 이 책의 의도는 당신을 좀더 깨어 있게 하고 당신의 모든 감각을 날카롭게 하며, 당신의 사고를 넓히는 데 있다. 나는 내가 그걸 해낼 것이라는 희망에서 이 글을 시작했다. 당신이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옆으로 밀어놓은 다음에 좀더 사랑에 골몰하도록 하고 싶다. 한 사람 한사람에게 또 전체 사회에 있어서 사랑의 기술을 익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이 분명하게 통찰되도록 하고 싶은 것이다. 모든 인간의 행복이 사랑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돈이니 소비니 하는 것들이 확실히 멋진 일이기는 하다. 우리들은 다소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다들 광적으로 그것을 추구한다. 그러나 사랑과 비교하면 그런 것들은 순식간에 의미를 잃는다. 재정적 기반을 굳히는 것은 확실히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사람은 돈이나 빵만으로 살지는 않는다. 삶의 행복, 영혼과 육체의 건강은 사랑이라는 실존적 문제와 유기적으로 결부되어 있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삶이 의미가 있다는 깊은 확신을 가진다.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유복해서 마음껏 돈을 쓰고 멋진 곳으로 휴가를 가봐도, 초원에 집을 짓고 요트를 띄워 봐도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다. 왜 사랑이 우리들의 삶에서 이런 중요성을 가지는지, 다음 장은 그것을 위해 할애될 것이다. 사랑은 주시(注視)이다.
첫 장에서 사랑은 무엇이 아닌가를, 즉 사랑에 대한 큰 오해들을 이야기하고 난 만큼 이제는 사랑의 본질을 분석해 보자.사랑의 본질을 좀더 상세히 파악하기 위해 나는 우선 사랑이란 아주 보편적으로 표현해서 상대방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이며 향하는 주시라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한다. 좀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사랑이란 긍정적인 주시다. 미움이 부정적인 주시인 데 반해 사랑은 긍정적이고도 적극적인 주시다. 그러면 긍정적인 애착이란 무엇일까? 그것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랑의 형태는 모성애다. 아기의 욕구에 대한 어머니의 긍정적 주시가 없다면 아이는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면 마음의 불구가 된다. 어머니의 사랑은 누구나 예외없이 경험하는 첫사랑인데 바로 그것이 한평생 동안 내내 사랑받는 경험의 기본 모델이 된다. 성인이 되면, 특히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게 될 때,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제한없는 주시를 경험하면서 모성애를 환기하게 된다. 그리고 그걸 의시하든 못하든간에 스스로 누군가를 주시하게 된다면 당신은 그 때 사랑의 상태에 있는 것이다. 주시란 다른 사람을 마주한 주목이고 존중이며, 마음의 깨어있음이다. 깨어 있음이되 잘못을 찾아내려는 비판적 깨어 있음이 아니라 관심을 가진, 긍정적으로 이해할 용의를 지닌 자세로서의 깨어 있음이다. 사랑의 본질에 대한 이 첫 묘사는 배움의 실행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이 자리에서 다시한번 그 점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긍정적인 주시와 관심어린 주목이 사랑의 전제라면 이런 말에서 배울 수 있다.당신은 앞으로 좀더 의식적으로 타인을 주시하는 법을 배울수 있다. 이런 입장과 결단을 통해 우리는 의외로 많은 효과를 얻는다. 즉 당신은 수동성이라는 구태의연한 보편적인 자세를 버리고 적극적이 될 것이다. 이제 당신은 다른 사람를 주시할 것이다. 좀더 주의깊고, 좀더 깨어있고, 좀더 의식적인 사람으로 변해 갈 것이다. 감각들이 날카로워 질 것이다. 상대에게로 관심이 이렇게 주의깊게 쏠리는데도 정말로 비판이나 미움, 경멸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미 사랑할 자세를 마련한 것이다. 좀더 주의깊게 다른 사람을 향하게 될 수록, 그만큼 더 그 향함이 사랑하는 행위로서의 '주시'로 바뀌어 감을 감지할 것이다. 주시는 인간에 대해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나를 둘러싼 모든 것, 이 세계와 이 순간 일어나고 있는 모든 현상, 지금 존재하고 있는 것 모두에 대해 일어난다. 주시의 입장은 나무들이나 날씨, 새들, 하늘의 구름, 사람과의 대화, 음악, 빛과 그림자, 바람, 공기 중의 냄새 등 모든 순간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현상과 연관된다. 이러한 주시는 매우 단순해 보이지만 대부분의 성인들에게서는 상실되어 버린 소중한 것이다. 주시에의 능력, 완전한 주목에의 능력을 우리는 어린 시절에 훨씬 더 많이 소유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이 대부분의 어른들보다 사랑하는 능력이 더 큰 것이다.주시의 능력은 왜 나이가 들어 가면서 점점 상실되는가? 그것은 우리가 이미 모든 것을 훤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규격화된 도식과 안전의 궤도 속에 맞추어 설계되면서 우리는 순간에 대해 주목하는 능력, 마음을 열린 상태로 유지하는 능력을 상실해버렸기 때문이다. 주시를 통한 사랑의 능력은 이성으로서의 인간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이 포착할 수 있는 모든 대상에 미친다. 그런 한에서 사랑의 능력이 있는 인간은 인간을 사랑하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생명 전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만일 가족을 사랑하는 어떤 사람이 직장에서는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죽인다면, 그의 사랑은 온전한 사랑이 아닐 것이다. 단언하건데 그는 오직 가족이라는 '환한 점' 하나를 가진 것일 뿐, 그밖에는 사랑이 없는 캄캄한 영혼의 혼미 상태에 있다. 이런 부분적인 사랑도 사랑인지는 회의적이다. 예컨데, 히틀러가 성인이 되어 정말로 단 한 사람이라도 사랑할 수 있었는지 나는 의심한다. 이런 긍정적인 주시는 매사에 수동적인 사람의 경우에도 이따금씩 한 인간에 의해, 한 이성에 의해 잠깐 일깨워질 수 있다. 격려의 자극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여느 때는 긍정적 주시가 거의 불가능한 사람에게도 그렇다. 주의를 기울일 줄 모르는 인간의 태도는 단순한 기능에 불과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부정적이고 증오에 찬 주시일 따름이다. 증오에 찬 주시는 부정하고 경멸하고 절멸시키겠다는 측면의 주목과 깨어 있음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랑에 담긴 주시는 긍정적이다. 그것은 적극적인 생명 긍정의 표정을 띠고 있다. 그것은 삶의 기쁨을 담보하는 모성애적인 시선이다. 생을 긍정하는 아름다운 주시만이 사랑에 이를 수 있다. 이런 보편적인, 모든 살아 있는 것을 향해 열려 있는 정신만이 인간과 세상에 대한 폭넓은 사랑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대한 주시는 사랑의 능력의 기초다. 이런 주시는 사랑의 전제 조건이다. 그것 없이는 사랑이 생겨나지 않고 자라지 않는다. 사랑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이 순간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현상과 사물을 사랑할 능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람은 그만큼 더 행복하고 만족한다. 가슴을 열고 세계와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주의깊에 주시하는 사람은 사랑의 상태에 있다. 그 때 그의 영혼은 모든 것을 사랑하는 능력을 소유하는데, 그것은 결국 두 사람 사이의 관계도 사랑의 차원으로 승화시킨다. 이런 전제가 없이는 그 어떤 사랑도 불가능하다. 파괴적이거나 증오하거나 주의를 기울일 줄 모르는 인간은 사랑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은 기껏해야 '섹스나 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원칙을 이해한다면 성에 어떤 역할이 돌아가는지도 분명해진다. 그것은 물론 상위 개념인 사랑의 중요성과 비교하면 하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삶과 사랑의 행복은 성의 주변을 맴도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긍정적이고 북돋아 주는 입장이 뒤따르는 감각들, 주의 기울이기와 깨어 있음 주변을 맴돈다. 사랑한다는 것은 주의와 주시를 기울여 주는 일이다. 수동적으로 주의와 주시를 받는 것이 아니다. 사랑 받는 것은 아름다운 부수적 결과일 뿐이며 조건은 아니다. 따라서 주시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의미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주는 것만이 사랑하는 능력이다. 여기에 개개인의 어려움이 있다. 반면 받는 것은 간단하다. 받는 데는 별 특별한 능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때로는 어려움이 되기도 한다. 받는 사람이 그 뜻에 맞게 가치를 부여하지 못하고 소비적인 자세를 취할 경우 그렇다. 받은 것에다 그 뜻에 맞는 가치를 부여하자면 다시 주시가 필요하므로 그냥 안일하게 소비적인 태도로 받아들이고 마는 것이다. 사랑의 기술을 익히기 위한 첫 걸음은 주시를 주는 방법을 익히는 데 있다.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주시를 준다. 그리고 그 답례로 무얼 받을까를 결코 묻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주시하는 그 자체에서 이미 많은 행복과 만족을 얻다 보니, 더 이상 받을 필요가 없다. 거기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주시까지 받게 되면 그것은 금상첨화일 뿐이다.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여기에는 조건이 없다는 점이다. 받은 것에다 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 하는 것도 한 역할을 한다. 초원에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혼자 서서 마음껏 생명의 기쁨을 구가하고 있는 한 그루 나무를 있는 그대로 주시한다고 하자. 그러나 나무가 감탄하면서 바라보아 달라고 나한테 무엇을 주는 일은 없다. 물질적이고 소비적으로, 그리고 이윤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인생관이 잡힌 많은 사람들에게는 나무를 바라보는 것은 시간 낭비다. 나무가 돈을 주지는 않으니까. 언젠가 한 물질주의자가 나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기왕에 나무를 바라볼 바에야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으면 돈을 벌 수 있지 않겠나. 그래야 시간 버린 보람이 있지.]그러면서 내가 퍽 한심하다는 듯 얼굴에 비웃음까지 띠는 것이었다. 그 사람으로서는 나무를 바라보는 일이 나에게 아주 많은 것을 준다는 사실, 즉 영혼의 평안함을 준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무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감정이 쓸모없는 짓이 아니라 나에게 힘과 안식을, 삶의 기쁨과 평안을 준다는 사실을 납득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사랑은 명상이다.
지금까지 주시를 통해 사랑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사랑은 주시이다. 그리고 또한 명상이다. 사랑과 관련하여 내가 이해하고 있는 명상은 인도 사람들의 종교적 명상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나는 지난번 저서 {영혼에 날개가 자라게 하자}에서 어느 정도 명상의 의미를 시사한 바 있다. 명상은 유형적으로 동방의 종교적 색채를 띤 기술이 아니라 누구나 이를 수 있는 상태다. 명상을 경험하고 익히는 데는 인도식의 구도적 자세가 필요하지 않다. 누구나 쉽게 생활 속에서 명상적인 상태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면적으로 평정해져서 긴장을 풀고 뱅뱅 도는 판에 박힌 생각의 틀을 차츰 차단하면 이윽고 명상의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위의 책에서 나는 명상에 이르는 법을 기술하려 했다. 그런데 독자들로부터 온 편지를 보고 내 말이 제대로 이해되지 못했음을 알았다. 많은 독자들에게는 명상에 대한 나의 생각이 낯설었던 것이다. 나는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을는지 얼른 판단이 서지 않았다. 명상의 의미를 내가 충분히 밝히지 못했던 탓도 있었겠지만, 그것을 쉽게 해석하여 제시하는 방법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명상을 좀더 이해하기 쉽게 밝히려 한다. 명상은 결코 부차적인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영혼의 전개를 지향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중요한 중심적 안건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명상이라는 영혼의 상태를 드문 체험으로부터 어렴풋이 짐작은 하는데, 그 순간 자신이 명상의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 그런 상태를 '나'를 주체로하여 묘사하고자 한다. 나는 지금 배 안에 있다. 배는 파도에 흔들리는 대로 내버려둔다. 배는 물가에 박아놓은 말뚝에 밧줄로 매어져 있다. 때는 따뜻한 여름 오후 다섯 시. 사방은 고요하고 이따금씩 물새우는 소리가 들린다. 잠자리들이 작은 헬리콥터처럼 물가를 따라 고요히 난다. 그것은 갈대 속으로 사라졌다가는 다시 떠오른다. 나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모든 감각이 열려 있다. 나는 배의 가벼운 흔들림과 내 살갗에 내린 햇빛의 따뜻함을 느낀다. 부드러운 한 줄기 자체는 생각하지 않고 다만 그 냄새만 들이마신다. 오성이 아니라 내 감각이 그것을 인지한다. 몽상적으로 행복하다는 기분을 느낀다. 온몸으로.오성은 쉬고 있다. 나는 그 무엇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는다. 완전히 순간에 몰입한다. 동시에 상이한 감각 인지로 이루어진 순간들 하나하나가 새로운 인지를 수반하며 다음 순간으로 넘어간다.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감각적으로 열려 있기 때문데 나는 평정과 고요를 강력히 감지한다. 새들이 소리를 내고 물결이 배를 흔들며, 물이 찰랑거리고 잠자리들이 스쳐 날아가고는 있지만, 그것들은 그냥 무심히 떠 있는 구름과도 같이 내 의식으로부터 멀어져 있다. 나는 몇 시인지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 문제도 내 머리를 스치지 않는다. 오성이 휴식으로 들어가고 감각들만 열려 있다. 나는 그 순간에 혼신적으로 그 무엇에 몰두하고 있다. 그 순간에 나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것이 내 속으로 뚫고 들어올 수 있다. 내가 능동적으로 어떻게 하지 않는데도 큰 안정과 긴장의 풀림이 영혼 속에서 퍼져 나간다. 나는 순간과 자연을 내면으로 받아들인다. 나는 충만과 안정과 만족을 느낀다. 나는 오직 순간에 열중한다. 현재에 전적으로 몰입하는 것이다. 어제도 내일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지금만이 존재한다. 나는 결코 졸립거나 최면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또렷하게 깨어 있다. 그것이 바로 명상의 상태, 그리고 동시에 사랑의 상태이다. 명상은 사랑이다. 명상의 상태에 있으면 모든 싸움과 경련이 끝나는 것을, 내가 나를 여는 것을 무심히 감지한다. 내 감각이 주의깊게 인지하는 모든 것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상태에서는 내 모든 인격을 쏟은 완전한 주시와 수용할 완벽한 마음의 태세가 나를 지배한다. 한 가닥 영원의 느낌이 생겨난다. 그것과 결부된 희열의 느낌도 생긴다. 명상의 상태 속에 사랑이 있고 사랑과 더불어 또한 상승된 존재감과 희열감이 있다. 이런 상태를 말로 정확하게 묘사하기는 어렵다. 말이란 사고의 영역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감각이나 영혼의 상태는 우회적으로밖에 그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말들을 정말로 이해하는 사람은 사실 내가 애써서 말로 우회적으로 그리고 있는 상태를 이미 스스로 한 번 경험해 본 독자뿐일 것이다. 이런 상태를 잘 모르거나 기억하려 하지 않거나 기억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거기에 대한 이해력도 없다. 그런 사람은 엄밀한 의미에서 이 상태를, 즉 명상과 주시 그리고 사랑이 무엇인지를 공감해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누구든 자신의 삶에서 이런 상태를 한 번쯤은 경험했을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어린 시절에 체험했을 것이기 때문에(어른이 되면서는 명상의 능력이 유감스럽게도 자주 상실되지만), 이쯤에서 나는 독자 여러분으로부터 내가 이해받을 것이라고 자위하고 싶다. 이제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기술된 예가 무엇을 뜻하는지 감지할 것이다. 명상의 체험은 물론 강가의 여름 하루에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배나 햇빛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명상은 언제나 가능하다. 날씨가 어떻든, 어느 계절이든 상관없이 삶의 모든 순간에 가능하다. 현재에 대해 완전히 열려 있기만 하다면 말이다. 어제와 내일을 나로부터 떨구고 오로지 순간에 일어나고 있는 것만 인지하게 되면, 우리의 모든 오성이 멈추고 모든 생각과 모든 계획, 모든 심적 긴장이 끝나면서 우리는 명상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명상은 어떤 충족되어야 하는 조건에 매여 있지 않다. 과정은 매우 단순하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명상이 전개될 수 있는 이런 상태에 도달하는 게 드물다. 명상이 또한 사랑이기도 하기 때문에 사랑이 그토록 드문지도 모른다. 자연에 대해, 함께 살아가는 인간에 대해, 동물들에 대해, 우연히 아는 사람에 대해, 한 그루 나무에 대해, 한 마리 새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그토록 드문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명상 속에서 전개된다. 우리의 오성이 평가하고 계산하려는 사고의 상태 속에서는 사랑이 전개되지 않는다. 사랑이 일어날 수 있기 위해서는 평가가 뒤따르는 오성이 멈추어야 한다. 그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문제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오성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오성은 인간을 노예화하고 평정과 열림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 이성의 영역인 오성과 사고는 편견과 평가, 간격 갖기라는 빗장을 지르고, 영혼은 그 영향을 받게 된다. 스스로를 여는 대신 닫아걸고는 섬세한 감각들을 철갑처럼 무장시키는 것이다. 오성은 감정들을 견제한다. 감각들을 감시한다. 주도권을 잡고자 안간힘을 쓰며 순간 속에서의 감각의 열림을 막는다. 그것이 바로 감각적 주목이나 감정의 경험과 비교할 때, 오성을 강조하는, 지성이나 사고의 과대 평가에 따르는 문제인 것이다. 사랑은 주시, 열림, 감각적 인지, 사고의 정지 그리고 마음의 준비 자세와 성찰과 명상의 능력을 요구한다. 오성은 의미를 잃는다. 오성은 강압이나 압력이 없이도 감정, 느낌 그리고 명상의 통로를 통해 나타나는 사랑에 굴복한다. 사랑은 자기 발견이다.
명상과 성찰 가운데서 사랑이 생긴다는 말을 했다. 이런 사랑은 응답을 기다리지 않는다. 나 자신에서 흘러나와서 주변 세계 위로 침전한다. 이런 상태 속에서 나는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반향이 어떤지 묻지 않는다. 이것은 자연에 대한 사랑에서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된다. 이성에 대한 사랑에서는 이 관계가 좀더 복잡해진다. 여기서는 반향을, 사랑의 응답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택된 사랑의 대상 가운데 자신을 비춰 보며 묻는다. [너는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과 똑같이 나를 사랑하는가?] 인간에 대한 이런 사랑의 모델은 유년 및 부모(우선적으로 어머니)에의 풍속에 있다. 아기는 어머니의 사랑에 종속되어 있다. 반향에 의존하고 있다. 자기가 사랑을 받는지 아닌지 본능적으로 정확하게 감지한다. 그의 존재와 그의 전체 인격 발전이 거기에 달린 것이다. 어머니는 아이가 민감하게 들여다보는 거울이다. '만약 내가 이것을 하면 엄마한테서 사랑을 받을 것인가?'라는 물음을 가지고서 말이다. 사랑받는다는 것은 아이에게는 실존이 달린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으면 벌과 불안이 생존 그 자체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어린아이는 부모에 의한 사랑의 보증 가운데서 자기 발견을 추구하는 것이다. 부모가 좋아하는 특성과 행동 방식을 계발하고 부모가 싫어하는 것은 자신 속에서 억압한다. 아이는 부모를 사랑한다. 다른 선택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사랑받기 위하여 노력한다. 자기 자신의 발전은 교육하는 사람들에 의해 조종된다. 사랑받기 위해 조종당하고 또 스스로 자신을 조종하는 것이다. 반면에 자연에의 사랑은 훨씬 문제가 적다. 내가 명상적으로 사랑하는 나무는 나에게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니까. 나무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나는 나무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기 때문에 그렇다. 어린 시절의 사랑은 자기 계발 및 자기 가치 평가와 밀접하게 얽혀 있다. 한 그루 나무나 한 마리 새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반면 인간은 무엇인가 대가를 요구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된다. 한 마리 새는 우리가 그로부터 사랑의 보답을 받느냐 아니냐에 종속되지 않은 채 우리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인간에 대한 사랑에는 문제가 있다. 인간은 서로에게서 무언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사랑이 아니라 이성으로서의 한 상대와 사랑이 중요해지는 때가 되어서도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려 애쓰던 유년기와 비슷한 심리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서우리는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가 우리에게 반향을 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가 우리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예컨대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의 노력, 너의 매력, 너의 추진력을 나는 좋아한다. 그렇지만 너의 경박함과 쉽게 감정에 쏠리는 경솔함은 싫어.] 한 인간은 우리가 스스로를 비추어 볼 수 있는 거울이다. 그 거울에 내 모습이 아름답게 비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다시 말해서 상대로부터 우호적이고 애정어린 반응을 얻으면 우리는 감격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의 대상은 우리 자신의 내적인 자기 발견과 자기 경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우리가 타인에 의해서 정의된 것으로 느끼고, 우리 자신이 어떤지, 그 사람이 우리를 어떻게 느끼는지, 그 사람이 우리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고자 한다. 어린아이가 어머니로부터 그러듯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사랑의 보답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우리의 태도를 우리가 타인의 거울을 통해서 알게 되는 기대와 표상에 따라 맞추고자 한다. 우리는 타인 속에서, 그의 진단 속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어린아이였을 때처럼 이런 경험에 따라 우리 자신을 만들어 간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의 조종으로부터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보호와 안정감을 추구했기 때문에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실존적으로 종속되어 있었다. 성, 보호, 안정감을 찾으며 또한 인정받고 싶어하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의 대상인 이성에게 종속되어 있다. 조종은 끝이 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성인이 되면 어린아이 때보다 더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나중에는 모든 것이 훨씬 좋아지리라고, 우리가 보다 자유롭고, 자율적이고 개방적으로 살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면서 말이다. 하나의 조종이 다른 조종과 교대되는 사실, 우리가 하나의 부자유로부터 다른 부자유로 빠져든다는 사실이 증명된다. 그렇다면 그것이 자기 발견일까? 다른 사람이 우리가 누구라고 말해 주면 우리는 진정 우리 자신을 발견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누구에게나 쉽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우리 자신을 찾아내려고 하는 한 우리는 우롱당할 수밖에 없다. 진정한 자기 발견은 무언가 다른 것이다. 남들한테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묻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자기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자율 상태에 도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리만치 어렵다. 영아 시절부터 인간을 조종하는 사회에서는 그것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할는지도 모른다. 우리 스스로가 이 과정을 꿰뚫어보고 그것을 끝장내지 않으면 우리는 무덤에 갈 때까지 언제까지고 조종당하는 인간에 그치고 말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제 내가 누구냐고 타인에게 묻지 말아야 한다.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에게 던져야 한다.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인가는 바로 우리들 안에 놓여 있다. 타인은 어머니건, 아버지건, 선생님이건, 애인이건 그 누구도 우리들에게 그 대답을 줄 수 없다. 그 사실을 우리가 인식하고 또한 그것을 지향하면서 살아간다면 사랑도 변화된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인간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내가 사랑의 보답을 받을 것인가? 나한테서 너는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사랑하지 않는가? 네가 나를 좀더 사랑하도록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내가 그만두어야 할까?] 누군가에게 이렇게 묻지 않고 말이다. 그런 질문은 우스꽝스럽고 품위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누구냐고 묻지 않는다. 우리 자신을 이제는 타인 속에서 발견하지 말고 오로지 우리들 자신 속에서 발견하자.이런 능동적이고 실제적인 인식 가운데서 진정한 자율이 보인다. 사랑의 보답을 받을지 어떨지 묻지 않고 타인을 사랑하는 능력은 남을 조종하지 않고 자기 자신도 조종당하지 않을 수 있고 당하려 하지도 않는 자율적인 인간의 성숙한 사랑이다. 성숙한 사랑은 자기 자신의 존재에 기반을 두고 있다. 더 이상 불안해 하지 않는다. 반향을 묻지 않는다. 내 자신 위에, 내 자신의 존재 위에 확고부동하게 근거한 것이다. 한 인간에 대한 사랑은 그럴 때 비로소 벌판의 한 그루 나무나 공중의 한 마리 새에 대해서 처럼 명상적이며 성찰적으로 된다. 그런 사랑은 다른 존재를 존중하며 사랑의 대가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하나의 과정이자 현상의 상태인 성숙한 사랑은 자기 발견의 토대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 가운데서 자기 자신을 알게 된다. 이 체험은 주시와 명상을 뭉뚱그린 것이다. 사랑은 영혼의 건강이다.
심리적 건강이란 무엇인가? 정신분석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에 따르면 건강한 사람은 문제 없이 일하고 사랑할 수 있다. 집중 장애가 없이 몰두하여 일할 능력이 있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물론 그 두 가지가 동시에 그렇다. 그러니까 활력있게 일하고 활력있게 사랑할 수 있다. 두 분야에서 결코 장애를 받거나 제한되었다고 느끼지 않는다. 영혼의 건강을 위한 이 기본적인 전제는 오늘날까지 달라진 것이 없다. 나는 심리적 건강에 대해 좀더 상세히 논의하려 한다. 심리적 건강은 사랑의 능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열려 있고, 매순간 살아 있는 존재론적 기쁨을 명확하게 체험한다. 그의 현실 인지는 흐려지거나 무뎌지지 않는다. 아무것도 방어하지 않고 순간 속에서 일어나서 그를 향해 다가오는 모든 것을 전면적으로 인정하며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소위 심리적 방어 기제들을 거쳐 현실을 왜곡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방어 기제에 대해서는 이미 앞의 두 권의 저술에서 묘사한 바 있으므로 여기서 반복하고 싶지 않다.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충만한 집중과 각성 속에서 매순간을 체험한다. 사실에 대한 불안감으로 하여 이성적 사고로써 현실을 일그러뜨리지 않는다. 그 사람의 영혼 속에서 처리되지 않은 체험이나 감정의 찌꺼기가 없다. 매순간마다 처리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근심이나 노여움이 있으면 즉시 화를 내며 노여움을 무의식 속으로 밀어넣지 않는다. 슬플 때면 즉시 슬퍼한다. 슬픔으로부터 주의를 딴 데로 돌리려 하지 않고 그 순간에 겪어낸다. 그런 사람은 불안할 때면 오히려 앞으로 나가 공격 속으로 도피하거나, 뒤로 물러나 순응 속으로 도피하지 않고 그 불안과 정직하게 마주선다. 남들 앞에서나 자기 자신 앞에서 스스로가 불안함을 인정하고 자신의 불안을 겪어 낸다. 불안에 마주서고 주의를 기울여 불안을 느낀다. 그렇게 할 때 불안은 실제로 사람에게 부담을 주는 이상으로 더 오래 짓누르지 못하므로, 실제로 부담을 주는 이후로도 여러 날, 여러 주일을 두고 더 불안할 필요가 없어진다. 불안이 그를 더 이상 추적하지 못하는 것이다. 꿈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앞으로 닥칠 불안이 있다면 그것은 그 때 가서 해결해야 할 하나의 새로운 불안이다. 새로운 불안으로써 극복되지 못한 불안의 찌꺼기가 씻겨 지지는 않는다. 어느 불안이든지 그 자체만으로 한껏 체험하면서 겪어 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 말은 분명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의 영혼이 거듭 싸워 눌러야 하는 오래된 불안들로 가득 차 있는데, 그것들이 일상의 여러 상황에서 슬금슬금 스며들어와 거듭 방어 기제들을 작동시키기 때문이다.심리 장애가 있거나 부담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해가 안 된다. 지금 닥친 불안에 어떻게 맞서는 것이 좋은지, 어떻게 그것을 겪어 내야 하는지, 어떻게 그 다음에 부담의 찌꺼기 하나 남기지 않고 처리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심리적으로 건강한 영혼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병들어 있다. 영혼이 건강하기보다는 오히려 장애가 있는 것이 흔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건강한 것이 통례여야 하는데도 말이다.영혼은 원래 고차원의 구조를 지닌 것이라서 인간은 그 장애에 대한 저항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그런 지식을 어디서도 가르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성인 대학의 야간 강좌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므로 자신의 영혼의 교류에 있어서는 오로지 자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들이나 친구들과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자신이나 타인의 영혼 같은 그토록 몽롱하고 애매하고 불안까지 일으키는 무엇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유쾌하지 못하고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다른 분야에서는 진보적이고 계몽된 우리 시대에 영혼의 세계는 아직도 함부로 다룰 수 없는 금기의 하나이다.사랑하는 능력은 심리적 건강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사랑을 가지고 주시하는 분야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특별히 복잡하고 위축된 심리적 고통과 얽혀 있다. 그러므로 사랑이 없는 고통스러운 체험과 거부가 즉시 처리되지 않고 방어 기제들을 통하여 일시적으로 옆으로 밀쳐놓게 되면, 장래의 태도에 장애를 주고 새로운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콤플렉스로 남게 된다. 인간을 점점 더 굳어지게 하고, 캡슐처럼 자신을 차단하고, 감정을 철갑처럼 무장하게 만드는 악마의 원(圓)이 생겨난다. 체험을 토대로 한 나의 개인적 계산으로는, 우리 인간의 90%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콤플렉스를 지닌 채 주시와 명상으로 성립되는 사랑의 능력에 있어서 심각한 장애를 받고 있다. 우리는 사랑의 능력과 관련된 이런 장애로부터 다시 빠져나오는 방법을 배워야만 한다. 그래야만 자유롭고 행복하고 건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을 때, 마음을 열고 두려움 없이 지극히 명쾌하고 똑똑하게 사랑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스스로 편안하고 건강하게 느낀다. 그렇게 느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편안하고 건강하다! 그러므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핵심적으로 중요하다. 어떻게 그것에 이르는가. 심리적인 건강과 삶의 기쁨의 전제인 이 능력에 어떻게 이를 수 있는가. 거기에 대한 몇가지 길은 이미 설명했다. 그것은 주시받느냐 못 받느냐에 주의하지 않고 주시하기, 명상, 현실 체험의 주의깊음과 명확성, 타인의 거울에 비추어 자기 자신이 조종되지 않는 주체적 자기 발견이고 열림이며, 순간에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 대한 순발력있는 직접적인 처리다. 우리는 오직 그럴 때만 명확해질 수 있고 매순간마다 두려움없이 사랑할 수 있도록 새롭게 열려 있다. 그 때 그 충만한 무궁무진함 속에서 영혼의 건강이 커 간다. 영혼의 건강이란 더 이상 두려움을 가지지 않는 것, 더 이상 슬프지 않는 것이 아니다. 두려움도 슬픔도 결코 쉽게 피해지지 않는다. 제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소망하고 투철한 방어 기제로써 도달하려 해봐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사실 상처입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이 세상 어디에도 어떤 형태로든 상처 입지 않는 존재는 없다. 지상의 그 어떤 건강한 생물체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상처입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기계도 로봇도 영혼이 깃들지 않은 질료들도 예외가 아니다. 상처입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의 건강은 상처입을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마음을 열고 내일에 대한 불안을 갖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다. 오직 그럴 때만 창조적인 삶이 전개될 수 있다. 사랑으로부터조차 자신을 보호하려는 사람은 삶에 맞서는 것이다. 그 결과는 근심, 둔감, 고통, 노이로제 그리고 서서히 죽어가는 것일 뿐이다. 사랑은 생명이다
사랑의 능력은 바깥을 향하여 자신을 여는, 자신을 개방하는 능력이다. 내 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 내 위로 닥쳐오는 것을 사랑하는 능력이다.사랑할 밖에 달리 어쩌겠는가? 나는 물론 중립적으로 치우침 없이 느끼거나 미워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타인에 대한 두려움 ㄸ문에 차라리 중립적으로 처신하려 한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 장기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속임수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살아 있음, 그것은 무엇인가? 모든 생명있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활짝 펼치기를 지향한다. 자기 자신 속에서 메마르고 오그라들기를 원하지 않는 바에야 삶과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짐승들에게는 살아 있다는 것이 한결 간단하다. 짐승들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냥 살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오성의 도움으로 삶과 생명을 이리저리 틀고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조종 기술로써 착륙하게 되는 곳은 결국 캄캄한 고뇌로 가득 찬, 오성의 속임수로 가득한 상자 속이다. 전적으로 오성에 기대는 삶은 영혼의 자발성을 빼앗기고 생명력을 상실한다. 죽음의 상태에, 그가 피한다고 믿는 상태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그 상태는 자신의 생명력을 규제하는 정도만큼 오히려 가까이 다가온다. 그 누구도 방어 기제나 억압 또는 속임수로는 사랑을 조금도 부술 수 없다. 사랑이란 우리들의 유일한 기회다. 사랑은 죽음을 향하여 가물가물 어두워져 가며 긴 자살로 죽음을 가속시키는 대신, 살아 있고 행복해질 수 있는 우리들의 유일한 기회인 것이다. 사랑 편에 서기로 결단을 내리려 하지 않는 사람은 삶의 편에 서지 않기로 결단을 내리는 것과 같다. 그의 삶은 그 때부터 서서히 죽어 갈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생명을 얻는다. 이 말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살아 있다' 함은 순간 속의 충만한 주의력이다. 그때 그때의 상황에 전적으로 몰입하는 것이다. 전적으로 '지금', '여기'서 살아야 할, 이 당장의 현재를 그 어떤 어제나 내일로 흐려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은 명확한 인지의 중요성은 명상을 다룬 장에서 의식시키려 한 바 있다. 모든 감각을 기울인 이 주시는 예민한 감성이다. 깨어 있는 감각은 살아 있음의 전제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성이 예민하지 못하며 무디고 둔하기 때문에 내적인 생명의 환희를 체험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에게는 산다는 것이 기쁨이기보다는 짐일 때가 훨씬 더 많다. 이따금씩 우리의 삶 위로 행복의 한 줄기 햇살이 내린다. 심리적으로 둔감한 기쁨 없는 삶 속으로도 이 '순간에의 몰입'이 들어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스릴 만점의 고공 열차를 타거나, 처음으로 스키를 신고 눈밭 속에 서거나, 작은 기숡을 미끄러져 내리거나 새롭게 사랑에 빠질 때, 우리의 정서는 고양되고 살아 있음 그 자체의 기쁨을 만끽하게 된다. 그런 체험들이 우리의 감성을 얽어맨 고리를, 둔감의 몽롱함을 깨뜨려 준다. 스스로를 살아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을 겹겹이 에워싼 안개를 사라지게 해준다. 그렇다 왜 안 된단 말인가. 언제든 그럴 수 있지 않겠는가. 내가 늘 주의를 기울이고, 열려 있고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기만 하다면 말이다. 내 영혼의 갑옷을 벗고 생명을 들어오게 하고, 살아 있음의 모험에 나를 넣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사랑은 삶의 영혼이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누구든 자신을 열어야 한다. 내가 나를 닫고 철갑을 뒤집어쓰면 현실은 다만 여과되어 들어올 뿐이다. 모든 것이 언제까지나 황량하고 회색빛을 띤 절망이다. 사랑의 능력은 사랑할 마음과 준비가 되어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평가 된다. 그러므로 항상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럴 때만 사랑이 전개될 수 있다. 내 쪽에서 무언가를 탐하지 않고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만 나는 충분히 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을 향하여 내가 의식적으로 지향하고 탐한다면 모든 것이 불안하게 경직된다. 오관의 깨어 있음을 명확히 인식하고 그것을 마음껏 펼치면 사랑이 전개될 수 있다. 그럴 때 삶은 사랑이고 사랑은 삶이다. 그럴 때 나는 깨어 있는 채로 사람들 가운데로 가는 것이다. 그 때에야 비로소 아무런 선입견 없이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온갖 현상들을, 온갖 사물들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더듬고 맛 본다. 이런 순간에는 오성이 중단된다. 또한 내가 오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제 편견들이 필요 없어지는 것이다. 모든 것은 저절로 일어난다. 발전되고 자란다. 이런 체험은 멋지다. 또한 그 가운데 행복의 비밀을 숨기고 있기도 하다. 이런 행복은 돈이 들지 않는다. 체계적인 교육도 필요하지 않다. 대학입시나 대학공부가 필요하지도 않다. 이런 행복은 값을 매길 수가 없다. 이 순간에는 모든 계산적 생각이 종언을 고하는 것이다. 사랑은 순수하다. 부가적인 수식들을 묻지 않는다. 그 자쳉에서 힘을 얻어 산다. 그 가운데서 나 자신의 생명력이 전개된다. 그 밖의 다른 아무것도 덧붙여질 것이 없다. 좀더 지향하고 노력해서 얻어야 할 빠진 것이 그 무엇도 이제는 없다. <페터 라우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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