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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 사랑에 관한 영화들 1) 인도인의 사랑- 카마수트라 인도의 성전 {카마 수트라}는 현세의 쾌락과 행복을 삶의 궁극적 목표로 여기는 인도인 기질이 낳은 연애철학이란 측면도 있다. 영화로 만든 {카마 수트라}(23일 개봉)는 {살람 봄베이}의 여감독 미라 네어가 만든 작품. 육체를 무기로 신분 상승을 꿈꿨던 어느 [팜므파탈](악녀)의 굴곡 많은 사랑과 인생을 중세 인도의 신비한 풍광을 배경으로 펼친다. 카스트 제도가 인간을 짓누르던 16세기 인도의 왕궁. 공주의 시녀이자 무희인 마야는 공주보다 훨씬 매혹적인 미모다. 두 여성은 소녀 때부터 서로의 신분과 미모에 말못할 질투심을 느끼며 갈등의 씨앗을 키워간다. 성년이 된 공주가 라신 왕과 결혼하던 날 마야의 공격적 질투심이 표출된다. 대담하게도 마야는 왕의 침실로 접근해 공주보다 먼저 잠자리를 함께 한다. 불경스런 정사는 곧 들통나고 마야는 왕궁 밖으로 쫓겨난다. 오갈 데 없는 마야는 왕실 조각가 제이를 만나 처음으로 사랑의 감정을 갖는다. 그러나, 제이는 자신의 예술이 방해받을까 두려워 마야를 떠난다. 사랑의 완성은 욕망에 대한 집착에서가 아니라 인간 영혼의 합일에서 나온다고 영화는 암시한다. 산만한 플롯이지만 진정한 사랑을 찾은 마야가 모래바람 속으로 사라지는 라스트 신이 여운을 남긴다. 2) 비운의 사랑 - 안나카레니나, 風月 높다란 벽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구중심처. 넓고 깊은 땅만큼이나 속내를 짐작키 어려운 대륙의 기질. 19세기말과 20세기초 시대변화의 덫에 걸린 러시아와 중국의 운명 또한 비슷했다. 낡은 지배체제는 전투적인 서양열강의 진격과 국내 새로운 세력의 부상으로 급속하게 세를 잃어갔다. 레오 톨스토이의 고전을 영화화한 [안나 카레니나]와 첸 카이거 감독의 [풍월]은 이 시대의 흔들리는 귀족계급 여인을 주인공으로 비운의 사랑을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1911년 러시아에서 영화화된 이후 수십 차례에 걸쳐 영화로 만들어진 [안나 카레니나]. 프랑스 배우 소피 마르소는 30여년만에 영화화된 이 작품에서 그레타 가르보, 비비언 리 등 선배들에 이어 엘레강스한 귀부인 안나를 부활시켰다. 대지주 카레닌의 정숙한 아내이자 한 아들의 어머니인 안나. 집안 일로 모스크바에 갔다가 오빠의 친구인 늠름한 장교 브론스키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불륜의 사랑은 그를 안정된 생활로부터 들어내 불안과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그러나 어떠랴. 삶은 차가운 합리가 아니라 열정에 의해 끌려가는 것을. 로마노프 왕조의 수도였던 페테르부르크 겨울궁전의 장엄함과 오페라하우스의 화려함, 얼어붙은 러시아의 하얀 겨울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늘 그렇듯이 시대의 서사는 먼 배경으로만 남아있고 주인공들의 모습이 클로즈업된다. 최근 작고한 게오르그 솔티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불멸의 연인]의 버나드 로즈 감독. 안나의 의상이 주로 검은색이듯 [풍월]의 색조도 전체적으로 어둡다. 청조의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가 하야하던 날 밤 쑤저우(蘇州) 땅의 팡가 장원. 팡씨 집안의 촌락 공동체인 이 장원은 대를 이을 남자가 없어 여자인 류이가 맥을 잇게 된다. 수천명의 친족들이 받드는 자리지만 집안에 풍기는 아편 냄새는 옛 지배세력의 몰락을 암시한다.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 류이는 올케의 동생인 충량에 대한 사랑으로 결국 파국을 맞는데…. 시대 변화 속의 개인을 그린 [패왕별희]로 칸 영화제를 석권했던 첸 카이거 감독은 이 작품에서도 신구문화의 교체가 불러일으키는 고통과 불안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장궈룽(張國榮)과 궁리 주연. 중국의 옛 저택을 구석구석 황홀하게 비추는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의 카메라가 신비한 음울함을 더한다. <신연수, 기자> [동아 97-09-27] 3) 사이버 사랑 - 접속 '익명'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요즘 젊은 세대들은 쉽게 낯을 가린다. 마치 대인공포증환자처럼 얼굴 맞대기를 꺼려하는 것이다. 익명의 시대에 요긴한 문명의 이기는 바로 컴퓨터. PC통신처럼 편리한 것도 없다. 혹시나 맘에 드는 사람을 만날까, 그렇지만 얼굴 붉어질까 염려하지 않아도 되고 맘에 들지 않으면 '이만 안녕'하고 나와 버리면 그만이다. 신예 장윤현 감독의 데뷔작 '접속'은 PC통신을 매개로 사랑을 만들어 나가는 남녀를 소재로 하고 있다. PC통신이라는 것이 이미 새로운 소재는 아니지만 스크린에 처음 얼굴을 비친 전도연과 톱스타 한석규의 만남만큼 이 영화는 신선한 자극을 준다. 철저히 얼굴이 가려진채 살아가는 두 도시인, 수현과 동현. 홈쇼핑 가이드와 심야 라디오 음악방송의 PD가 바로 그들의 직업이다. 친구의 애인을 짝사랑하는 수현은 심야 드라이브와 PC통신을 통한 접속으로 스스로 마음을 어루만지는 외로운 현대인이며, 동현은 희미한 옛사랑에 집착한 나머지 자기상실감에 빠져 버린 우울한 남자다. 동현이 옛애인으로부터 받은 희귀음악을 심야프로에 내보내면서 수현은 또 다른 자극을 받는다. 이어 PC통신으로 접속을 시도한 수현은 그 음악을 다시 신청하고 혹시나 옛 애인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동현이 대화를 시도해오면서 '해피엔드'와 '여인2'라는 ID로 두 사람은 만난다. 푸른 모니터 위에 깜빡이는 커서를 따라 이들의 대화가 이어지면서 수현과 동현은 마음의 상처가 차츰 치유됨을 느낀다. 그러나 장윤현 감독은 컴퓨터 화면을 계속 내보냄으로써 관객이 가질 수 있는 갑갑함을 없애기 위해 이들 두사람의 내레이션으로 슬쩍 바꿔 영화를 이어가지만 관객들은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 이들은 진지한 대화와 싹트는 사랑의 감정에 몰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전반을 통틀어 이들 두 사람이 만나는 횟수는 고작 네번. 영화관앞, 지하철안, 레코드가게, 그리고 라스트신이 전부다. 라스트신을 제외하고는 모르는사람인 채로 이들은 스쳐 지나가고 만다. 마침내 이들이 최초로 직접 '접속'하게 되는 라스트신. 하염없이 극장앞에서 기다리는 수현과 찻집 2층창문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동현. 기다림에 지친 수현이 그들을 연결시켜준 그 음악이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가운데 공중전화로 그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남긴다. 바로 뒤에 앉아 있는 동현이 수현을 뒤쫓아 뛰어 나오도록 만드는 것은 바로 어느 틈엔가 자라난 사랑의 힘이었다. 장윤현 감독은 상업영화권에서는 신인이지만 독립영화집단인 장산곶매에서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를 공동연출하면서 실력을 쌓아온 소위 언더그라운드출신. 감독이라기엔 아직 젊은 서른살 감성을 그의 제도권진출 첫작품에 쏟아부었다. 섣부른 홍콩영화 흉내내기도, 화려한 카메라기교도 없지만 오히려 깔끔한 영상처리와 약간은 건조한 대사가 흥행예감을 느끼게 한다. <손정인 기자> [국제신문 09/05] * [인터뷰]영화 [접속]만든 장윤현 감독 제1회 부천 국제판타스틱영화제 경쟁 부문인 부천 초이스에서 유일한 한국 작품인 [접속]은 PC통신을 통한 젊은이들의 만남과 사랑을 그렸다. 이 영화로 충무로에 데뷔하는 장윤현감독(30)은 독립영화단체 [장산곶매] 출신. [파업전야]와 [오! 꿈의 나라] 등을 공동 연출 제작했다. [운동]에서 사랑으로 카메라를 돌린 이유는 무엇일까. {80년대나 지금이나 사람에 대한 관심은 같습니다. 90년부터 몇 년간 헝가리에서 영화공부를 하고 돌아오자 저는 이방인이 돼 있었죠. 이때문에 공동과 전체보다 개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달라졌다고나 할까요} 그는 93년 귀국해서 젊은이들 사이에 컴퓨터문화가 널리 퍼져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함께 사는 사회, 서로간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80년대의 열망이 90년대에는 PC통신으로 이어졌다}고 그는 생각했다. 기계를 통한 만남의 한계를 지적하자 그는 {아녜요. 직접 만난다고 통하는 건 아니죠.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아무리 만나도 소용없는데 PC통신의 익명성은 쉽게 마음의 문을 열게 해주죠}라고 말한다. 그 자신도 이젠 PC통신 마니아. 사이버공간에서의 사귐이 현실에서 열린 만남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영화에 담고 싶었다고 한다. 아마추어였을 때와 비교해 어려웠던 건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과 관객이 원하는 것, 그 접점을 찾는 일이었다고. 그래서 제작사인 명필름(대표 이은) 스태프들과 2년에 걸친 힘겨운 공동시나리오작업을 했다. 그 결과 감각은 젊지만 시각은 가볍지 않은 따뜻한 영화가 탄생했다. <신연수 기자> [동아일보 09/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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