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편지
미루나무 빈 가지에 오늘은 눈이 내려
겨울 병사동도 외롭진 않습니다
겨울이 되면 벽을 찾아 죄를 짓고 들어온
빈 몸뿐인 사람들도
오늘은 명절처럼 무거운 솜옷을 받아입고
양철물통 하나씩 끌어안고 잠들거나
숨겨논 것들을 꺼내 무엇인가 몰래몰래
만드는 모습이
탐조등 불빛 스쳐가는 높은 담벼락도
오늘은 따뜻한 집과 같습니다
미루나무 빈 가지에 오늘은 눈이 내려
겨울 병사동도 외롭진 않습니다
소매치기 간질쟁이 하나
낡은 담요 잘라 만든 조끼를 컵라면 몇 개와
바꾸고 마주보며 은근히 웃으니
삶은 더운 국물처럼 맵고 짜고 얼큰합니다
미루나무 빈 가지에 눈 내리지 않아도
이제는 울지 않겠습니다
지상의 가장 멀리 버려진 병사동도 이제는
정이 들어 기침 하나에 얼굴 하나 떠오르니
삶은 뼛속에 더욱 깊어 사무쳐도
아직은 묶인 몸
서둘러 돌아가진 않겠습니다
사랑이여 겨울이 겨울인 동안
겨울 병사동은 따뜻한 집입니다
미루나무 빈 가지에 오늘은 눈이 내려
홀로 부르는 나의 노래도
외롭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