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학이 '반문화'의 거점이 되지 못하고,
97년 서울대학교 및 기타 대학들에서 노동자-학생 연대라는 전통적 구호와 함께 진행된 재학생 도서관 독점운동(?)은 대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한국 대학생들의 이중잣대를 드러내주고 있어 매우 흥미롭다.
더욱이 다른 한편에는 학생들의 자율원칙에 따라 조합주의적 방식으로 운영되는 생활도서관 운동이 버젓이 공존하고 있다. 나아가 일부 대학에서는 재학생들과 민주동문회 등이 힘을 합쳐 대학 앞의 사회과학 서점들을 조합식으로 운영하는 상당히 발전된 모습들도 엿보인다.
재학생의 도서관 독점 요구와 자율적인 생활도서관 운동이 공존하는 이 모순적 현상의 토대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그것은 발전된 정치의식과 일상을 지배하는 보수적 문화간의 괴리라는 학생운동의 현실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대학 도서관에 대한 독점은 대학생들의 의식이 여전히 특권의식, 혹은 잘 보아야 집단 이기주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드러내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그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담론에도 불구하고, 대학에 대한 이들의 주인의식이 자본주의적 소유관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대학이 '반문화'의 거점이 되지 못하고,
'신지식인'의 구호 아래
대학을 자본주의의 생산기지로 탈바꿈하려는 권력의 구조조정 시도에 대학인들이 무력할 수밖에 없는 것도 기본적으로는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대학 도서관에 대한 독점 의식은 결국 한국의 학생운동이 국민교육과 언론 등을 통해 기성체제과 부과했던 규율권력의 틀을 부수지 못하고,
체제의 틀 속에 포섭되고 만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운동의 신체적 격렬성이나 구호의 급진성과 대조되어 흥미롭다.
도서관 독점의식에서 드러나듯이, 대학인들의 의식 심층에 자리잡고 있는 특권의식 혹은 소유의식 앞에서 급진적 구호는 불 앞의 얼음이다.
적지 않은 운동인자들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손쉽게 기성체제에 포섭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한국의 대학문화는 어찌 보면 처음부터 체제에 포섭된 '하위문화'(subculture)였을 뿐이다.
그것은 대학의 생산성에 대한 권력과 자본의 공세적 요구가 성공할 수 있는 주요 원인이기도 한다.
한국의 대학에는 유감스럽지만 기성체제의 공세에 맞서 대학의 공공성을 지켜낼 수 있는 '반문화'가 애초부터 극히 취약했던 것이다.
대학은 궁극적으로 사회적 소유이지, 대학 구성원의 사적 소유물이 아니다. 대학의 공공성에 대한 원칙이 대학인의 의식과 일상문화 속에 깊이 뿌리박을 때, 21세기 한국의 대학과 사회는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는 미래의 동반자로서 발걸음을 같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정치권력과 자본의 생산성담론에 부응하는 대학의 사회화를 거부하고, 공공성의 담론에 기초한 대학의 사회회를 향한 첫 발걸음이기도 하다.
임지현(한양대 사회학과 교수[email protected]) 대학생 정보지 미래의 얼굴 1999년 7,8월호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