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
술에 취해 돌아온 저녁
아무렇게나 쓰러져 잠든 아내와
자식들의 모습이
취한 눈엔 전부 나무토막처럼 보여
뛰쳐나가 손에 들고 온 도끼로
모두 깨끗이 끝장내 버렸다던 박씨
다른 사형수와는 달리
구석진 독방에
수갑 차고 혼자 앉아 있는 내 모습이
마음에 걸리는지
뭣 땜에 그런
엄청난 짓을 저질렀는지 몰라도
젊은 친구가 안됐구먼
내 방 앞을 지나칠 적마다
간혹 먹을 것을 넣어주며
말을 건네곤 하던 사람
어쩌다 세면장 같은 데서
마주치면
그럼 내 먼저 가서 자릴 잡아놓을 테니
젊은 친군 한 일 년쯤 천천히 쉬다 오소
농담 한마디 던지곤 껄껄껄
혼자 웃다가도
이내 침통한 표정이 되어
이젠 더 이상
기다리는 것도 지겨우니
차라리 얼른 달아주었으면 좋겠다며
신음처럼 한마디씩 내뱉곤 하더니
오늘 아침
마지막 인사 한마디 나누지 못한 채
끌려가선
여태 돌아오지 않는다
죽음이란
정말 예감할 수 있는 것일까
며칠 전부턴가
식구들의 얼굴이 자꾸 꿈에 보인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면
일찌감치 단정하게 옷 차려입고 앉아
하루종일
낮은 소리로 염불만 외더니
그렇게 훌쩍 가 버린
지금
난 오히려
그가 한없이 부러운데
저승에 가면
차마 낯을 들고 볼 수 없을 것 같다던
식구들 만나
지금쯤
웃는 얼굴로 한자리 마주앉아 있을까
오늘 밤은 어디서
날아왔는지
낯선 풀벌레 한 마리조차
저리 울며
좀처럼 떠나지 않는구려
박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