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장수
동냥 나간 교회마다
문전박대당한 뒤
도둑놈이 거지 괄세한다며
마음먹고
이 교회 저 교회 찾아다니며
불을 지르려 했던
박장수
그 무렵 일어난
대구 금호호텔 방화사건의
범인으로 둔갑해
대구교도소 미결사 내 옆방으로
흘러온 박장수
어릴 적 끓는 물에 얼굴을
데어 일찌감치
제 얼굴을 잃어 버린
박장수
나 같으면 거지로 사느니
한번 유명해져서 감옥에서 편히
살겠다는 형사들의 회유와
고문에 못 이겨
물을 뒤집어쓰듯 이제는 엄청난
죄를 뒤집어쓴 박장수
그것이 막대한 손해배상을
회피하려는 사장의 음모인 줄도
모른 박장수
이제는 빠져나올 수 없는 돈과
법의 그물에 걸려 퍼덕이는
박장수
부자들의 안락한 삶과 편안한
잠자리를 위해 제물이 된
박장수
에라 모르겠다
한번 들어온 감옥 옷 줘 하루 세끼
밥 줘 큰소리나 쳐야겠다
나이가 낳든 적든 반말이요 욕이던
박장수
허나 방화범 선배요 사형수 선배
라고 내게만큼은 꼭 문형님
문형님 하던
박장수
철없는 아내 불러줘요
나이도 어린 놈이 꼭 흘러간 옛노래나
뽕짝만 찾던 박장수
어느 날 밤
난데없이 교도관들 몰려와 나를
불러낸 그 밤
십중팔구 사형집행이다 믿은 박장수
문형님 문형님 목이
메이더니
무기수로 감형되어 돌아오자
에이 난 또 죽으러 가는 줄 알았지
반가움 반 섭섭함 반 얄궂은
표정의 거지같은 놈
박장수
헤어지던 날 그리 울던
박장수
후에 들으니
사형구형에 무기선고 이제는
기약없는 무기수가 된
박장수
마침내 세상이 절 속였다며
양철조각 칼로 삼아 제 몸 여기저기
베어버린 박장수
대전인가 김해론가 이감 떠난
박장수
장수 장수 박장수
부디 네 몸 네가 상치는 말고
세상에 불을 놓던 그 독한 마음으로
장수 장수 박장수 네 이름대로
질기게 살아남아
장수 장수
박장수
다시 만나
박장수